조실 무허 큰스님 송년법어-석가사 송년대음악회,2005년 12월 10일 홈지기 2006.01.08
첨부화일 : 없음

이제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지혜의 이야기로써 마음의 음악을 먼저 듣고, 이어서
귀로 듣는 음악을 듣겠습니다.

말 없는 세월의 강 속에서 이제 우리는 2006년 새해를 맞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해를 맞이하면서 무엇이 내 마음의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이 내 마음의 행복의 길이 될 수 있을까?

한번쯤 무엇을 반성하고,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면, 어떻게 하면
이 새해를 잘 맞이해서 보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우리의 소원을
이루면서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는 12월 끝자락입니다.

송나라 때 야부 도천스님이 계셨습니다.

야부스님의 시 두 게송을 소개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같이 걷고 같이 살아 간다네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며 함께 하는 오랜 세월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으며 서로 함께 다 같은 것을
아 - 바라건대 머리 돌려 다시 생각을 바꾸지 마세

북 치는 이와 비파 타는 이가 한 집에서 서로 만나야 한다네
그대는 버들 언덕을 가고, 나는 나루터에서 잠을 잔다
강 위엔 때늦은 성근 비 지나가고
봉우리마다 푸른빛이 노을 하늘에 닿아 있네.”

무슨 뜻이냐 하면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모두는 다 같은 사람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같은 구성요소에 마음을 가지고 있고,
슬플 때는 누구나 다 슬프고, 괴로울 때는 누구나 다 괴롭고,
마음이 기쁘고 행복할 때는 누구나 다 같은 것을,
같은 생(生)의 공간에서 출생하고 같은 죽음 속으로 가건만,
서로 헐뜯지 말고 우리가 참으로 같다는 것을 크게
생각하면 우리는 바로 다 하나하나가 바로 나라는 것을
생각을 돌려서 너와 내가 다르다고 생각을 바꾸지 마세.

두 번째는 우리는 서로 얼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저 하늘에 구름이 그 모습이 일년 내내 서로 각각 다른 것처럼,

그러나 같은 하늘 같은 구름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만일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외로워지고,
더 괴로워질 것이네.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그대는 나이며, 나는 그대요,
우리가 서로 한 마음으로 같다고 깨우치고 산다면,
강 위에 때늦은 성근 비 아름답고 봉우리마다 푸른빛이
가득한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네.

야부스님께서 이런 시를 800년 전에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중국에 3조 승찬스님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곧 우리 인생에 지극한 행복은 어렵지 않다.
우리 인생에 지극한 성공은 결코 어렵지 않다.
단지 그대 자신의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것이 어떤 이야긴가,
이제 다시 조금 더 얘기를 계속하면서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모두 네 가지의 구성요소로 되어 있습니다.

곧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다 네 개의 마음, 네 개의 판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우리 마음은 느낌, 곧 감수작용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 한다면, 우리 모두는 느낌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느낌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외롭습니다.
왜냐하면 느낌이 외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사실과 증거, 깊은 생각의 결정으로 판단하는 사실의 판단, 이러한 마음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오직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의해서만 하는 경험의 판단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네 번째는 역사에 맡기자, 인연에 맡기자, 업(業)에 맡기자, 판단하지 않겠다, 모르겠다, 이와 같이 이것을 망각의 판단이라 합니다.

이러한 망각의 판단,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 지나서 공도리의 판단, 이런 마음이 또 우리에게
있습니다.
절대로 판단하지 않는 것, 느낌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실로 판단도 하지 않고, 경험과 기억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망각에 판단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공도리로 일체를 보면,
우리 마음 가운데 자연히 모든 사실의 본 모습이 우리 마음에
스스로 떠오른다.

마음의 일체 괴로움은 없어지고, 괴로움이 없어졌기 때문에
공도리로 일체를 본다면, 모든 일에 대하여 우리가 굳이 나서서
판단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 가운데 일체의 사실이 그대로
우리 마음에 드러난다.
이런 뜻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이것은 어떤 얘길까요?

우리 마음에는 일체 패자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늘 살면서 외롭고 좌절하고, 그러한 것이 일체 패자의 마음입니다.

일체 패자의 마음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분노의 능력, 분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곳에, 어떤 나라, 여당 대표하고, 야당 대표하고 만났습니다.
그들이 만날 때는 많은 국민의 기대를 모으면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한쪽 대표가 이것은 나라를 구하는 길이요, 받아 주십시요.
이것을 받으면 당신도 살고, 우리도 살고, 이것은 정말 진실입니다
라고 제시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쪽 한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당신의 얘기를 받아들이면 나는 무조건 다칩니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얘기를 절대 듣지 않습니다.

상대가 듣지 않으려는 것을 이미 알면서 받아 들이십시요, 그리고
이 사람은 무슨 소리하느냐, ‘경제나 챙기십시요, 경제나’, 그리고

나중에 돌아가서 똑 같이 다 이쪽에서 울화통 터진다,
저건 상대가 아니야, 또 다른 쪽에서 울화통 터진다 상대가 아니야
그렇게 말해 버립니다.

그 두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남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양쪽은 대립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받아들이면 내가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받아라 받아라 소용없다 이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만일 이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상대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고
무조건 들어준다고 한다면, 갑이 을의 얘기를 깊이 들어주고,
또 들어주고, 깊은 이해를 표시하면서 공감을 느끼고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리고 희망에 공감하고 그렇게 한다면...

두 번째 또 얘기를 들어만 줘요, 세 번째 또 들어줘.
그러면 그때는 다른 한 쪽이 미안하니까
나도 당신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다 얘기 해 보십시오 라고...
우리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이해의 능력이 우선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우리 마음에 본래로 가지고 있는
이해의 능력을 쓰지 않고 분노의 능력을 먼저 씁니다.

남편은 아내를 상대로, 아내는 남편을 상대로, 자식과 부모
또는 친구와 친구, 우리 사회와 사회, 이들이 만일 우리 가족을
중심으로, 나 자신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중심으로,
분노의 능력을 먼저 쓴다면, 곧 이해하는 능력을 버리고
오직 분노의 능력을 먼저 쓴다면 반드시 오직 일체 패자가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패배자가 될 것이다.

일체 패자의 두 번째는 갈망, 목마름의 능력이 있습니다.
언제나 갈망하기만 합니다.
순수한 갈망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갈망이라 합니다.

언제나 갈망만 합니다. 부의 갈망, 명예의 갈망, 권력의 갈망,
그칠 날이 있을까요?

이러한 갈망들은 마침내 일체 패자의 길이 될 것이니,
일체 패자의 세 번째 능력은 집착의 능력입니다.

내 생각이 옳다, 내가 옳다, 내 것이 옳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내 생명이다. 이렇게 오직 집착의 능력을 가지고 마침내
일체 패자의 마음을 키우고, 기르고 일체 패자의 마음만을 가지고
죽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성취해야 되는 것은 과연 부이고, 명예이고, 권력일까요?

그것이 우리 마음에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우리 마음에 내 본성일까요? 내 자신의 인격일까요?

내 마음에 본상은 바로 이런 분노의 능력,
이런 갈망의 능력, 집착의 능력, 그것 밖에 없는 것일까?

본래 우리 마음에 일체 승자의 마음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일체 패자의 마음을 선택하고 살 것이냐
일체 승자의 마음을 선택하고 살 것이냐,
일체 승자의 마음에는 이런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한의 이해력, 일체 승자의 마음자리는 무한의 이해력,
위없는 이해의 능력, 이러한 특징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첫 번째,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잘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의 마음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무한의 이해의 능력을 내가 씀으로써 내 마음이 먼저 내 뜻대로 되어져야 합니다.

세상을 지배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지배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강할까요?

세상을 지배한 사람보다는 자기 마음을 지배한 사람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인연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인연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을 잘 압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자는 현실에 불안이 일어나면, 사정없이 마음에 불안이 일어납니다.

불안한 사실이 일어나면 마음에 불안이 일어난다.

세상을 다 돈으로 살만한 부를 가졌고,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졌고, 세상에 절대적인 명예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에 괴로운
일이 일어나면 사정없이 괴로워진다.

자기 인생살이에 불안한 일이 일어나면 사정없이 불안해져 버린다.
곧 부와 명예와 권력은 우리 최고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 마음에 진정한 인격의 성취, 우리 삶의 인생의 최고의 이상,
우리 마음에 최고의 이상이란 곧 일체 승자가 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일체 승자이다

내 마음이 단지 단순하게 위없는 이해의 능력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능히 일체 승자의 길에 들어갈 것입니다.

두 번째 일체 승자에는 대자대비와 사랑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랑은 기쁨이요, 사랑은 기쁨을 주는 것이요, 격려를 주는 것이요,
위없는 용기를 주는 것이요, 그 사람에 마음을 안온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우리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곧 공격 본능이 아니라,
내 자신 마음의 향상, 내 자신 마음의 성공, 마음의 성취,
마음의 행복을 위하여 대자대비와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내 마음에 일체 승자가 될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끝으로 세 번째 우리 마음 가운데 일체 승자에는 초월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마침내 가지고 있는 그 마음에 의하여
우리 마음은 구속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마음 때문에 우리는 불행해 지고
이 마음에 의하여 우리는 구속이 되기 때문에 슬프고 외롭고 번뇌에
마음의 괴로움에 파묻힐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이 길을 벗어날 것인가.

이 마음을 버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버리면
우리는 진정한 위대한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짐승의 본능과 신성이 합쳐져 있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신성을 선택한다면 곧 위대한 초월자의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우리 마음의 힘으로 우리 마음에 바닥을 눌려서
이 뭣고--- 하면서 끝없이 마음의 바닥이 없어져 버릴 때까지
다 누질러서, 이 마음의 없어짐을 우리가 능히 체득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해를 한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침내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체 승자의 마음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일체 패자의 마음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 자신은 일체 승자의 마음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내 마음 가운데 우리 모두 일체 승자의 마음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더불어 싸울 일도 없을 것이요, 다툴 일도 없을 것이요, 우리 마음에 일체 승자라는 대 초인을 우리는 낫낫이 모두가 다 이루어서 행복한 인생, 성공하는 인생, 참다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마치면서 새해 우리의 희망과 축원을 담아서 게송 한편 모두에게 드리고, 오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동산에
새로운 해 뜨니
이 밝음 보는 이
한결 같이 일체 승자
이룸이로다

사바세계 근본이
극락정토이니
아는 이 모두
속마음
적적성성
성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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