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을 벗어나는 최상의 길 아라한 200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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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을 벗어나는 최상의 길


번뇌가 있다고 할것 같으면, 그것은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모든 貪慾도 어리석음이고, 모든 성냄도 분노나 슬픔까지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 어리석음을 無明이라고 하는데, 누구든지 그 마음에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사실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만일에 누구든지 인생에 있어서 슬픔이 있다면, 이것도 결국은 어리석음이라. 고뇌가 있거나 슬픔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恨이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오는 것이다. 인생의 방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답답한 마음이나 우울한 마음이 있더라도 역시 다 어리석음 때문에 오는 것이다.

오늘은 여러분 모두에게 한결같이 이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최상의 길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 모두에게 번뇌를 벗어나는 길이란 곧 어리석음을 끊는 길이예요. 물론 중생에게 있어서 貪毒과 瞋毒과 癡毒이 다같이 무섭지만 역시 그 뿌리는 癡毒이라고 했어. 결국은 어리석기 때문에 貪毒이 있는 것이고, 瞋毒이 있는것이다.

불교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오늘은 佛法 얘기를 하거나, 세존의 가르침을 얘기하고 싶지 않고, 오늘은 우리들 얘기를 하고 싶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 우리 자신의 수행 이야기, 우리들 자신의 마음 얘기를 하고 싶어.

다시 말해서 만일 여러분 마음속에 잘 안되는 것이 있다든지, 혹은 여러분 마음속에 여하한 恨이나, 분노나 슬픔이나 불안이 있다 할것 같으면, 그것은 다 어리석음 때문에 온다. 모든 불안은 한결같이 어리석음 때문에 온다. 만일에 여러분 마음에 진정한 法의 행복으로 충만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역시 어리석음 때문이라.

여러분 마음속에 대 평정이 구족되어 있지 않다면, 역시 이것도 어리석음 때문에 온다. 만일 여러분 修行中에 막힘이 많다면 그것도 역시 어리석음 때문이리라.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 마음이 참으로 안온하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참으로 안온하지 못하다면 역시 어리석음 때문이라.
여러분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불안이 있다면, 역시 그것도 한결같이 어리석음 때문인 것이라. 그래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수없이 많은 사연이 각자에게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 마음 속에 여러종류의 병이나, 여러종류의 번뇌나 여러종류의 갖가지의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 한결같이 한가지 잘못 때문이라.
그 한가지 잘못이란 바로 어리석음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이 어리석음의 병을 다스리고 이 어리석음을 마땅히 제어해서, 이 어리석음을 끊어서 일체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이것이 곧 생사해탈의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하신 생사해탈을 들먹이지 아니하더라도 저 어려운, 대단히 듣기에도 난해한듯한 저 구경돈오(究竟頓悟)라든지 무슨 대원정등정각(大願正等正覺) 이라든지, 생사해탈이라든지, 그렇게 어려운 말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오직 내 마음 가운데 어리석음을 끊어서 일체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이것이 곧 가장 참다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어리석음을 끊어서 진실로 내 마음 그저 남의 마음이나 책속에 있는 불경 속에 있는 것은 다 차치하고라도 내 마음에서 일체 불안을 끊고 일체 번뇌를 끊어서 일체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이것이 곧 佛이며, 佛의 길이며, 천인사(天人師)이며, 천인사의 길이며, 무상사(無上士)이며, 무상사의 길이 되는 것이다.

단지 한가지 다른 것은 오직 이 한가지 뿐입니다.
여러분이 보통 사람으로서 그저 단지 마음만을 생략해서 어리석음을 끊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고, 한가지의 차이는 있습니다.
무슨 차이냐. 나 자신은 곧 불성이 있다. 나 자신은 바로 부처의 성품이 있다. 내 마음은 곧 불성이다.
더 쉽게 말하면, 나의 자성은 곧 바로 부처다. 내게는 그대로 지금 이자리에서 바꿀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고, 다른 아무 것도 더하거나 덜하거나 어떻게 할 것도 없이, 이대로 마음 이대로 부처의 마음이 완전히 구족 되어져 있다.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지 말고 또 덜할 것도, 더할 것도 없이 증감할것도 없고, 거기에 청(請)을 생각하거나, 탁(託)을 생각할것도 없고, 청탁을 생각할 것도 없이, 나 자신의 마음 이대로 부처의 마음이다. 곧 자성을 바로 의지한다면은 여러분의 수행은 이제 실다워지는 것입니다.

依自性 故로 有生死하고 依自性 故로 得解脫이라 했어.

자성에 의지한고로 생사 번뇌, 망상이 있고, 생사 번뇌가 있어, 생사와 일체 번뇌가 있고, 자성에 의지한고로, 득 해탈(得 解脫)이라. 자성에 의지한 故로 得涅槃이라 그랬어. 그랬는데 前者는 자신의 자성에 의지한것을 알지 못하고 곧 자성을 알지 못하고, 모든 번뇌妄想을 자신으로 삼아서, 이것을 내 생각으로 삼아서 끄달릴때, 거기에 끄달려갈때, 말하자면 이것은 피동적인 것이다. 거기에 끄달려 있으므로 有生死하고 일체 번뇌가 있는 것이라.
내가 참으로 자성에 자발적으로 자주적으로 의지해 들어갈때, 내가 자성이 있음을 전혀 의심하지 아니하고, 내가 자성에 의지함을 추호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나 자신이 자성에 의지해 들어갈때 이것이 곧 得解脫의 길인 것입니다.

공부는 멀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공부는 결코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山僧은 여러분더러 저 먼 佛經속에 있는, 華嚴經속에 있는 뭐, 54位를 증득하라.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아니면 저 法華經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엄청난 부처가 되어라. 그런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길을 여러분에게 山僧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직 山僧은 여러분들에게 최상승 도리를 가르치는데, 오늘 저녁 法門을 잘 들으면 여러분이 알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山僧은 여러분에게 최상승 도리를 가르쳐, 오직 祖師禪의 본분지사를 가르치는바.

최상승 도리, 祖師禪의 道理, 祖師禪의 本分道理를 가르치는바, 그러면 이 祖師禪의 道理는 어떻게 시작하느냐. 이 祖師禪 道理는 우선 첫째로 저 먼 華嚴經의 54位 부처가 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또 무슨 환상적인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도 다 버리고, 또 道가 멀다, 아득하다 하는 생각도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내 마음을 하나 바로 하자. 내 마음 하나 바로 하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祖師禪 도리는 오직 이 마음을 바로 하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마음 밖에 있는것도 아니며, 마음밖에서 구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음 밖으로 구하지 아니할 것이냐.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 가장 쉬운 것입니다.
먼저 나 자신의 마음이 이대로 부처의 마음인것을 믿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야. 내게 자성이 있는것을 이 자성에 의지하겠다는 마음을 불퇴전으로 바로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겠다. 나는 큰 절을 짓는다거나, 유명한 사람이 된다거나 그런것에 내 생명을 구하지 않겠다. 큰 절을 짓는다거나 무슨 유명한 사람이 된다거나 아니면 무슨 도사가 된다거나 아니면 만 중생의 공경을 받는 부처가 되겠다거나 그런데에 나의 이 생명을 구하지 않겠다. 그저 살아가는것 이것에도 내 생명을 구하지 않겠다. 오직 다른 별다른 것이 아니고 그대로 다른 생각을 굳이 일으키지 말고, 의심하지도 말고, 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의 마음이 있다.
이대로 나의 자성에 의지한다. 내 마음이 부처인지라 자성에 의지한다. 곧 내 마음이 부처다.
자성이라는데 대한 자성의 믿음. 信을 絶對로 하는 것이다. 둘째로 자성에 의지하는 이 精進을 絶對로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못났지만,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대단히 미흡한 사람이지만, 나는 게으르고, 貪瞋癡도 있고 그리고 나는 번뇌도 있고,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계없이 자성에 의지하는것만은 천하제일로 하겠다. 곧 절대로 자성에 의지하고 그리고 자성에 의지하는바에 이 精進을 절대로 하겠다. 天下第一, 當代第一, 참답게 오직 있는 그대로 가장 절대로 하겠다.
곧 이 精進의 절대자가 된다면, 이것이 최상승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없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자성의 信을 바로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대신분에 의하여 자성에 의지하는바, 의자성의 修行에 절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生死解脫의 길입니다. 이것이 곧 가장 참다운 최상승의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자성에 의지하는 공부를 더 구체적으로 할 것이냐. 모든 佛弟子들에게는 한결같이 방벽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佛弟子들, 출가한 이들은 다 세존의 인연 공덕을 입어서 출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출가한 모든 佛弟子들은 한결같이 세존의 法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세존의 인연 공덕력에 의하여 출가한 제자들은 한결같이 세존의 法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참으로 세존의 法에 의지 하였는가. 언제나 平常心속에서 참으로 세존의 法에 의지 하였는가. 언제나 사람을 대할 때나, 말을 할 때나 비록 꿈속에서 까지도 나는 세존의 法에 의지 하였는가.
만일 세존의 바른 法에 언제나 항상 의지하고 있으면, 한점 후회가 없다면, 여러분 수도는 참으로 평안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수도 생활은 한결같이 안온한 것이며, 참으로 허물이 없습니다. 일체의 허물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세존의 바른 法에 의지하고 있다면, 이미 무한히 평안한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의 修行이 세존의 바른 法에 의지함이 부족함이 있다면, 오늘 山僧의 안내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서 이 자리에서 모두 다 증득해 마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미룰일이 아니며, 이것은 공부를 해서 道를 닦아서 하자 라고, 미룰일이 아닙니다. 차차 하자, 노력해서 하자. 그렇게 미룰 성질의 일이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에서 다시는 후회할 바가 없는 향상의 수행, 최상승의 수행을 이 자리에서 바로 當下에 구족할수 있도록 안내 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수행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첫번째는 方策입니다. 두번째는 智慧, 세번째는 精進. 이렇게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한결같이 세존의 바른 法에 온전히 의지하기 위하여 이 마음에 方策과 세존의 바른 법에 온전히 의지하기 위하여, 이 마음에 方策과 세존의 바른 法의 智慧, 자성의 智慧, 智慧를 구족한다면, 方策과 智慧와 精進을 구족한다면, 여러분의 수도는 가히 큰 강과 같이 안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方策에 대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方策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막 시작한 사람들이, 가장 미흡한 사람들이 택할수도 있으며, 또한 지극히 수승한 사람이 택할수도 있습니다.

곧 첫번째 方策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戒를 말하는 것입니다.

戒라고 하는것은 뭐, 오만가지 어려운 戒를 다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戒라고 하는것은 결국에는 둘로 나뉘는데, 한가지는 身戒와 한가지는 心戒를 말합니다.
身戒라고 하는것은 몸의 戒이며, 또 한가지, 心戒라고 하는것은 마음의 戒를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身戒의 여러 戒 가운데서 한가지를 굳건히 지키고자 하는 方策이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한가지, 한가지해서 마침내 일체에 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누구라도 '나는 반드시 不殺生의 戒를 지키겠다.' 라고 자기 자신의 마음의 바른 方策을 확립한다면,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不殺生의 戒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뜻인데, 남의 마음을 해치지 않는것, 곧 자신의 마음을 해치지 않는것, 마음을 해치지 않는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因이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의 마음도 해치지 아니하며, 내 마음도 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오직 자성에 의지하는 힘으로써, 오직 자성에 의지하는 힘으로써, 저 사람의 마음도 해치지 않는다. 내 마음도 해치지 않는다.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또한 나타내 보임이 일체 육식은 하지 않겠다. 일체 고기는 먹지 않는다. 또한 굳이 생명을 죽이지 않겠다. 곧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기는 먹지 않으면서 남의 마음을 함부로 해친다면, 그것이 더 큰 살생의 因이 되는 것입니다. 또 남의 마음을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늘 내 마음을 핍박하고 많은 부담을 느끼면서, 번뇌에 빠진다면, 이것은 부처를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마음의 부처를 해치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不殺生의 戒는 바른 뜻이 너와 나의 마음을 해치지 않는다. 또한 이 相을 나투어서, 일체 살생하지도 않으며, 일체 고기도 먹지 않겠다. 만일에 어떤이가 있어서 정말 不殺生의 戒를 근고히 바르게 지킨다면, 이 사람의 方策은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좋습니다. 不偸盜하면 不偸盜의 方策을 굳건히 지킨다. 不偸盜란 훔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곧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는다.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不淫도 좋고, 不妄語도 좋습니다. 不妄語라면, 그 功德이 말할수 없이 수승합니다. 나는 결단코 중생을 비난하지 않겠다.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결단코 남의 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결단코 남의 말을 헐뜯어서 하지 않겠다. 비단같이 칠해서도 말하지 않고 여기서 들은 말을 저기서 옮기지도 않겠다. 여기서 이 말하고 다시 저기서 저말하지도 않겠다. 결단코 망녕된 말을 하지 않겠다.
누가 있어서 만일 근고히 자성에 의지 하면서, 不妄語의 戒를 철두철미하게 지켜서 마친다면, 이와같이 不妄語의 戒가 바르게 확립된 가운데 그 修行에 근고히 노력해 간다면, 안정된 사람입니다. 얼마나 그 마음은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여러분 가운데서 단 한 가지도 내세울 계가 없다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한 가지쯤은 자신있게, 지극히 부끄럽지 않게, 절대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戒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이번 하안거에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해서 오늘 잠자리에 들기 이전에 한가지의 戒를 선택해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殺·盜·淫·妄 가운데서 한가지를 선택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의 方策은 굳건해질 것입니다.

不淫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갈애심을 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없는것을 황당하게 세우지 말고, 자신을 가지고 오직 자성에 의지하면서, 근고히 목숨을 걸고 한가지의 方策을 확립하겠다. 오직 불퇴전의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이 한가지는 내가 지키겠다. 解逸함이 없이 부끄러움이 없이 이 한가지는 근고히 지켜서 반드시 승리 하겠다. 반드시 이 지키지 못하는 바의 두려움을 완전히 벗어나겠다. 나는 벗어나겠노라. 자신의 마음에 먼저 좋다고 느끼는것 한가지를 정해서 바르게 확립하는 것은 좋습니다.

不妄語라는 것은 妄語, 兩舌, 綺語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 자신 가운데 殺盜淫妄의 4 波羅夷 가운데서 단 한가지도 철두철미하게 확립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다 부끄러운 출가자인 것입니다. 거짓 수행자며, 거짓 출가자인 것입니다. 수행을 하겠다고 하는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진실로 세존의 法에 의지하고, 일체의 어리석음을 끊고저 한다면, 먼저 바른 方策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 어느 것이나 한가지를 굳건히 확립함으로써 마침내는 일체가 다 확립되는 것입니다. 황당하게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한가지라도 철두철미하게, 바르게, 온전히 확립함으로써, 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고, 일체 중생을 바라보며, 한점 부끄러움이 없으며, 三千大千世界 諸佛菩薩을 보면서도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 마음은 안정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 마음은 평정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 마음은 지극히 안온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비로소 佛法 因緣을 만나서, 百千萬劫 難遭遇한 佛法因緣을 만나서 비로소 의자성의 길을 닦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바른 方策을 확립해야 합니다.

다음, 方策의 두번째는 곧 이러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貪·瞋·癡라는 것이 있습니다. 貪이라고 하는것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싶어하는것, 무엇을 배우고 싶어하는것, 무엇을 얻고 싶어하는것 등의 집착이 있으면 이것도 다 貪心입니다. 만일에 외로워한다면 이것도 결국은 貪心인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불평불만하지 않는다는 方策을 확립한다면 훌륭한 것입니다.

자! 여기서 한가지 쉬운 공부를 가르쳐 주겠어요.
어떠한 경우도 나는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어떠한 경우도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孔子의 道를 닦는 사람은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라고 할 것이요. 神仙道를 닦는 사람이 있다면, 불평불만하지 않는다는것을 호흡수련 하면서, 호흡하면서 불평불만을 녹일 것이다.
그러나 호흡의 수련이라고 하는것은 정신통일을 닦아 들어가는데 있어 필요한 과정이지, 그것이 마음의 번뇌를 끊는 근본적인 것은 되지 못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늘 끝없이 불평불만이 일어나. 그때마다 호흡을 해야 하니까. 그러다 숨이 끊어지면 쓸 호흡이 없잖아. 그것만 가지고는 그 다음에 習氣는 연속되어져 있는데 어떻게 生死解脫할 수 있겠어? 호흡이 있을 때는 호흡을 가지고 불평불만이 일어날때마다 녹이지만 그렇게 끝없이 권투질하듯이 싸우면서야 호흡이 떨어질때는 다음에 쓸 호흡이 없는 거야. 좋기야 하지만 궁극은 되지 못한단 말이야.

그러면 佛弟子는 어떻게 할것이냐.
불평불만이 일어나. 불평불만이 일어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 누구든지 여러분의 경지에서는 쉽게 불평불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일어나는 불평불만을 자성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즉시 자성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합니다. 여러분 가슴에는 평안이 가득할 것입니다.

修行者는 마음이 언제나 행복해야 합니다. 修行者는 언제나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며 충만한 法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부는 대단히 좋습니다.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 라고 山僧이 지적하거나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결코 성내지 않겠다. 성낸다는것은 슬퍼한다거나 우울해한다는 것이 성냄의 因이 된다는 것을 바로 갈파했을때 그 뜻이 있습니다. 누가 말해도 짜증내거나, 성내지 않는다. 성내지 않는다는 方策을 확립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저 단순히 눈을 감고 이제부터 하늘과 땅과 사방과 十方三世 諸佛께 서원하고 절대로 성내지 않겠습니다.

모든 분노가 일어날 때는 다 자성으로 의지 하겠습니다. 한결같이 자성에 돌이키겠습니다. 언제나 어떠한 분노나, 슬픔이나, 우울이나, 불안이 일어날때도 오직 한결같이 자성에 돌이키겠습니다. 한 생각 돌려서 오직 자성에 의지하겠습니다. 오직 자성에 돌이키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최상승의 수행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없는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 분노를 항상 한결같이 언제나 자성에 돌이킨다면 이 사람은 대평정을 얻는 사람입니다. 대평정을 얻는 사람이라. 바로 이 자리가 절대적인 絶對 자성에 돌이킨다. 일체의 번뇌를 자성에 돌이킨다. 일체 분노를 자성에 돌이킨다. 일체 불평불만을 자성에 돌이킨다. 일체 불안을 한결같이 자성에 돌이킨다 라고 마음을 바로한 연후에 그 絶對를 닦는 것입니다. 이 絶對를 닦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의 수행입니다. 바로 이 絶對 닦음에 있어 불퇴전이 이루어졌을때, 이 사람은 불퇴전의 修行者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겠다는 욕망의 불퇴전이, 불퇴전이 아닙니다. 바로 이와같이 자성에 돌이키는 바의 불퇴전, 이것이 올바른 불퇴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한결같이 말하거니와 만일에 여러분들이 이와같이 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의자성을 익히는 것이며, 또한 닦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로해서 나는 결코 성내지 않겠다. 나는 어떤 경우든지 불평불만하지 않겠다. 나는 어떤 경우든지 불안을 끊겠다. 그것은 더욱 좋습니다.
나는 오직 자성에 의지할뿐 불안해 하지 않겠다. 온전히 불안을 끊겠다. 불안을 至滅하겠다. 불안이 일어날때는 언제나 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일어났을때는 언제나 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성에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성에 돌이킬때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無念 자성에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대로 또한 바로 直指해서 자성에 돌이킬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어떤 이가 일체의 貪心을 끊었다면, 그 사람은 초월자인 것입니다. 일체의 貪心, 부러워하는 마음, 일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 보람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 무엇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 토굴 하나 갖고 싶은 마음, 절 하나 갖고 싶은 마음,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 마음, 그리고 갖고 싶은 마음을 버리면서 그 뒤에 물체의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그 불안까지도 다 자성에 돌이켜버려, 다 버려버리는 거라.

여러분은 한결같이 자신이 잘못할까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먼저 이것부터 자성에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성에의 진정한 절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잘못할까봐 불안해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이것이 진정으로 어리석음을 끊는 길입니다.

한가지, 어제 저녁에 어떤 신도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분은 기도하러 왔던 보살인데, 어느날 거리에서 우연히 신호등의 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에 본듯한 남자가 있더란 말이라. 어디서 봤다 싶어 자세히 보니 자기 남편이더래. 그런데 자기 남편이 한 여자와 둘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더란 말이야. 즐겁게 얘기하고 있고 크게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더란 말이라.
십여년을 살면서 자기한테는 한번도 그렇게 밝게 웃어 본적이 없었던, 그 남편의 모습을, 크게 즐거워하며 소리 높여 웃어 본적이 없는 남편의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몸이 춥고, 한없이 쓸쓸하고 한없이 어두운 구렁속에 박혀져 있는듯한 자신의 불쌍한 모습이 느껴지더란 말이라.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어쩐지 남편에게 "여보, 저예요! " 하면 "아! 당신이야. "하면서 반갑게 할 것 같더래. 그러면서 이 사람은 내 아내라고 누구에게 소개해주면 "아, 그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손잡고 같이 차타고 돌아오려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리고 그 뒤에 가서 " 여보! "하고 불렀단 말이야. 그랬더니 돌아보는 남편의 모습은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고 그렇게 분노어린 표정이 될 수 없더라. 그렇게 험악한 인상으로 자기를 돌아보면서 "왜 왔어? " 그 여자는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가버리더란 말이라. 그리고는 버스를 타면서 남편은 이쪽에서, 자기는 앞에서 서로 떨어져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왔단 말이라.

그러면서 "제가 이 남자하고 살아야 합니까? "스님,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하며 목놓아 우는거라. "거룩한 스님이시여, 저에게 살 길을 열어 주소서." (웃음)….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잘 가르쳐주고, 용기를 주고, 반성하게 해주고, 희망을 주고, 평온하게 해주고, 마침내 안정하게 해주고 그리고 축복해 주면서 그 마음을 평정케해서 아주 밝고 기쁨에 찬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생각이 굉장히 옳은거라. 남편이니까 당연히 "안녕하세요." 하고 그 여자와 소개 시켜주면 얼마나 대범하냐 이거야. 남편이 잘못했다 이거야. 죽일놈, 나쁜놈이다 이거야. 난 왜 이렇게 불행하나 이거야.
그러나 이것도 돌아보면 이사람의 어리석음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때로 이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때는 없는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그때 그 장면을 보고도 자성에 의지하는 힘이 그저 억천만분의 일이라도 있었더라도 혹은 그러지 않고 조금만 자기를 자제하는 힘만 있었더라도 그냥 바라보고 돌아왔을 거라.
며칠 있다, 혹은 그 다음날 아침, "그때 제가 당신을 봤어요."라고 얘기 하면서 "당신 그때 모습이 즐거워 보였어요."하면 그냥 넘어갈 거라. 혹은 이 사람이 조금만 따뜻하게 얘기한다면 남편하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얘기가 될거라.
그러나 이 사람의 눈은 불행과 불안의 마음으로 차 있거든. 분노가 차 있어. 智慧가 나타날 수 없는거라. 불행의 마음으로, 분노의 마음으로 차 있으니까. 두려움으로 차있고, 불안으로 차 있어. 우선 불평의 마음으로 차 있는거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은 나에게 한번도 이렇게 따뜻하게 해준적이 없었다는 생각,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한번도 행복한적이 없었다 라고 혹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한번도 평안했던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한번도 至極福樂의 행복은 맛본적이 없었다 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출가한 여러분까지도 혹시 이같은 비슷한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라도 나는 불행 했었다. 나는 아주 못났다. 나는 이렇게 어두웁다. 나는 이렇게 불행하다. 라는 無明,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이럴 때 方策이 필요합니다. 모든 어리석음, 오직 자성을 생각하는 바, 자성 외의 일체 어리석음은 다 반성하는 마음, 이것은 지극히 높은 것입니다.

만일 누가 자신이 있다면, 일체의 어리석음을 단멸하겠습니다. 오직 자성에 의지하고 의자성하여 一切의 癡心, 一切의 無明心, 일체의 어리석음을 단멸하겠다는 方策을 확립하고 불퇴전의 수행을 닦아간다면 이 사람은 훌륭합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天神의 공경을 받을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도 일체의 貪心을 다 버리고 의자성하여 일체의 貪心을 단멸하겠다 라고 비로소 바르게 관찰하고 의자성의 불퇴전의 수행을 닦아간다면 훌륭한 것입니다.

참다운 공부가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라. 진정한 生死解脫이 이곳에 있는 것이라. 어리석음을 끊고 일체의 번뇌를 끊는 사람이라. 곧 生死解脫의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도 진실하게 성내지 않겠다. 이제부터 절대로 성내지 않겠다. 이제부터 절대로 불평불만하지 않겠다. 마땅히 최상승의 수행자답게 일체의 불평불만을 단멸하겠다. 의자성….

뚫으면 되는거야. 이것은 뭐 화두타파 하듯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그렇게 의자성해서 瞋心단멸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이 方策은 대단히 위대한 것입니다. 위없는 方策이 되는 것입니다.

대중은 다 세번만 따라서 합시다.

의자성 瞋心단멸, 의자성 瞋心단멸

마음에 새기면서 갈등 없이, 마음에 새기면서 따라 하세요.

끝으로 세번째는 만일에 이와같이 더욱 높은 方策을 닦는이는 더욱, 참으로, 위없이 뛰어난 것입니다. 언제나 이 마음 가운데서 근고히 迷惑을 끊는 바의 方策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般若의 方策이라고 합니다. 般若란 무슨 소리냐. 五蘊皆空의 도리에 계합되는 것입니다.

五蘊皆空은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이라.
늘 입으로 중얼중얼 한없이 해보는 그 소식이라.

이것은 무엇이냐? 가장 쉽게 이 脈을 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듯한 五蘊皆空의 도리,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의 도리는 무엇이냐? 이 方策은 무엇이냐?

간단하게 有念에 의지하지 않겠다.
일체 내 마음이 어떠한 경우에도 有念에 의지하지 않겠다. 어떠한 경우에도 有念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有念이 곧 生死이며, 生死는 곧 일체 有念인 것입니다. 일체의 有念이 바로 번뇌며, 번뇌는 바로 일체 有念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좀 어려운 공부긴 하지만 오로지 일체 有念에 의지하지 않겠다.
有念에 의지하지 않겠다. 오직 자성에 의지 하겠다. 오직 無念에 의지 하겠다. 그렇게 돌이킨다면 이 사람은 그야말로 위없는 方策을 이미 증득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方策의 공부가 됩니다. 언제든지 자신을 잘 경계하여서 일체 有念에 의지하지 않겠다.

출가한 이들도 돌이켜보면 귀신을 무서워하고 靈駕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아 이런 사람들은 方策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有念에 의지하지 않는다.
결단코 有念에 의지하지 않는다. 오직 無念爲宗, 자성爲宗이라 한다면 말할 수 없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일체 有念에 집착하지 않는다. 일체 여하한 有念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먼저 내 내면에서, 내부에서 일체 여하한 有念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어떠한 有念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와같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一切 有念에 의지하지 않는다.

다음 두번째, 智慧의 공부를 일러주겠습니다.
간단하게 智慧의 공부를 닦는 사람은 언제나 특별한 생각의 작용이 없이, 마음도 없이, 생각도 없이 언제나 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안정을 따라서 智慧가 나타납니다. 평정을 따라서 智慧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특별한 생각에 의하지도 아니하고, 특별한 마음에 의하지도 아니하고 특별한 經에도 의지하지 아니하며, 오직 그대로 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智慧란 생각이 아닙니다. 智慧란 無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智慧란 평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智慧란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知解인 것입니다.
智慧란 無念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智慧란 평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닦을 것인가? 생각도 없이 마음도 없이 그대로 자성에 의지하여 언제나 돌이켜서 그대로 자성에 의지하라.

여러분, 이번에 우리 절에 신도들이 5, 60명 왔었어요. 여러명이 기도하고 갔어요. 그러나 오는 사람 한사람, 한사람마다 다 山僧은 그들에게 마음의 안온을 갖게 해줍니다. 희망을 갖게 해주고, 그 마음을 평정하게 해주고, 한사람도 빠짐없이 山僧은 다 만나서 그 사연을 들어주고, 智慧를 주고, 희망을 주고 그리고 안온을 줍니다. 智慧를 주고, 안온을 주고, 평정을 주고 그리고 精進력을 줍니다. 사람들마다 한없이 복잡하고 안타까운 사연들, 절박한 사연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고 역시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희망을 갖게 해주고 향상의 智慧를 갖게 해주고 안온과 평정을 주고 精進力을 갖게 해줍니다.

여러분 자신은 무한한 행복에 가득찬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땅히 여러분은 至極福樂의 행복에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결같이 限이 없는 평정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限이 없는 평정을 구족한 이어야 합니다. 평정과 안온의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곧 이것이 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성에 의지함으로써, 여러분은 실로 마음에 항상 깊은 法悅이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자성에 의지하면, 깊은 法悅이 저절로 구족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고, 法悅이 가득차고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여러분에게 한없는 행복이 있어야 행복을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없는 기쁨이 있어야 그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의 슬픔을 닦아주고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위없는 智慧가 있어야 智慧를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가 언제나 오직 좌복 위에서만 精進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오늘 일러주는 것이 方策과 智慧의 수행입니다. 최상승 수행이라. 자성에 의지하는 것은 따로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방법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생각에 의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當下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끊어짐이 없이 언제나 그침이 없이 무한히 한량없이 智慧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한량없이, 한량없이 바로 자성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에서 혹시 어려움이 있거든, 적어도 여러분 생활에서 고뇌가 있거든, 오직 자성에 돌이키십시요. 當下 의지가 되지 아니할 때는 곧 이렇게 수행해도 좋습니다. 當下자성에 의지가 되지 아니할때, 直指人心, 直指의 자성이 이루어지지 아니 했을때는, 모든 여러분 일체의 번뇌를, 일체의 괴로움을 일체의 마음의 모든것을 한결같이 자성에 의지 하십시요.

끝으로 精進에 대해서 일러주겠습니다.

여러분 자성은 여러분이 조금만 의지하는 힘을 기르면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특이한 힘이 있어. 위대한 힘이 있어. 무한히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일체 이 마음에 참 解脫을 완성케하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자성에 의지하는 바의 마음이 판단하지 못할것, 이 마음이 판단하지 못할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루지 못할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성에 의지하는 바의 힘은 마침내 天地宇宙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天地萬物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고 천지 萬法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

참으로 절대 불퇴전해서 자성에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불안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 불안이 없어. 본래 부처의 자리엔 근원적인 불안이 當體에 없는 것이라.

여러분의 의자성의 수행의 법력은 저 간지즈강 모래 전체와 같고 내가 비유로든 것은 그 모래 한알의 백만분의 일 만큼도 되지 못한 것이라. 사소한 하잘것 없는 것이라. 가치가 없는 하잘것 없는 것이라. 의자성의 수행에 비한다면.
의자성의 수행은 위대한 것입니다. 한없이 위대한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 누구든지 의자성의 힘이 있으면, 그러한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오직 있는것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누구든지 引導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안내해 줄 수 있어. 인연이 있는이라면.

여러분도 의자성의 힘 좀 닦아 보세요. 누구든지 다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해요. 이 얘기는 저 갠지스강 모래 한알의 백만분의 일, 모래를 망치로 쪼개서 그 한알의 백만분의 일, 그 티끌 하나 그것밖에 안돼. 그러나 의자성의 法力은 저 갠지스강 모래 전체와 같다. 이말이야. 恒河沙 전체의 수와 같다.

곧 그와 같이 여러분의 의자성의 공덕력은 不可思量인 것이며, 그 法力은 不可思量인것은 그 위덕력은 不可思量한 것입니다. 그 무한, 무한의 힘은 참으로 不可思量인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 마음은 일체를 완전히 구족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오직 더욱 참 마음을 發해서 의자성의 마음을 닦기만 하면 됩니다.
무엇이 어렵겠어? 나 이제부터 不妄語 지키겠다. 바로 하고 절대로 瞋心 일으키지 않겠다. 절대로 남의 말은 안하겠다. 탁 탁 方策 세우세요. 그리고 생각과 마음에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바르게 의자성 하겠다 하면서 一切 有念에 의지하지 아니하겠다. 무엇이 어렵겠어?

끝으로 精進을 얘기합니다.
精進해서 三昧를 닦는 精進도 있습니다. 삼마드히 저 밀라레빠 존자처럼 근고히 삼마드히를 닦는 精進者도 있습니다. 또는 근고히 염불하는 精進者도 있습니다.
근고히 경전의 바른 뜻을 參究하는 精進者도 있습니다. 平常心 가운데서 하는 精進을 活精進, 活禪이라 하고, 좌복 위에서 하는 精進을 고요할 '靜'字, 靜의 精進이라고 합니다. 원은 둥근 모습과 점이 같이 있습니다. 원의 가운데는 점이 있고, 그리고 바깥에는 그 둥근 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평상심에서 活禪, 活精進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좌복 위에서의 정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진하는 것입니다. 물론 삼매, 삼마드히의 정진, 疑團獨露의 정진을 하지 않는 이라 하더라도 조석으로 반야심경을 눈을 감고 근고히 그 뜻을 참구 하면서 쓴다든지 아니면 금강경을 근고히 읽으면서 그 뜻을 참으로, 참 공부 하면서, 조석으로 본다면 그것도 다 정진입니다.

삼마드히, 禪定, 專念을 닦는 것만이, 삼매을 닦는것만이, 오직 정진은 아닙니다. 專念, 禪定三昧를 닦는 것도 또한 정진이면서 또한 능히 금강경을 참구하는 것도 같은 정진이며, 반야심경을 쓰면서 그뜻을 참구하는 것도 또한 정진 입니다.

세존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출가 수행자들이여! 그대 자신의 精進에 의지하라. 出家 수행자들이여! 그대 자신의 불퇴전의 精進에 의지하라. 오직 精進에 의지하라."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 의지할 바의 정진이 있다면 이 사람은 안전한 사람입니다.

바라건대 여러분 모두에게 간곡히 바라건대 1분, 1초, 1각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요.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절대로 마음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근고히 사무치게 정진해야 합니다. 간절하고 간절하게, 지극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오직 참마음, 참으로 참다운 마음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정진은 2가지가 있습니다.
평상심에서의 의자성 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좌복 위에서의 靜精進이며, 이 정정진 또한 마음의 고삐를 굳건히 잡아서 絶對不動으로 턱 꼼짝 못하게 바로 잡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삐를 콱 잡아서 이 소의 고삐를 콱 잡아서 꼼짝 못하게, 바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매번 앉을 때마다, 매번 정진할 때마다 참구하는 이는 참구의 뜻에 깊이 점입하여 향상이 있어야 할 것이며, 삼매를 닦는 자는 반드시 그날, 그날 그때의 정진에 있어서 반드시 승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른 성취가 있어야 할 것이야.

여러분의 의자성은 이미 손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道의 문턱에 들어선 것입니다.
오직 한 마음을 바로 하면 됩니다. 오직 一心을 바로 하면 최상승의 대 수행인이 될 것입니다.
그저 다른것은 아니야. 경전에 말한 어려운 大圓正等正覺 때려치고, 네 마음 하나 온전히 조복하라. 오직 네 마음 하나 바로 조복하라. 네 마음에 온전히 바로 의지하라. 오직 그것뿐이라.

이것이 최상승 도리라. 이것이 祖師禪의 근본도리이며, 본분지사니라.

저 경전에 있는 환상적 부처는 그만두고 오직 네 마음 하나 바로 조복하라.

오직 네 마음의 바른 부처에 돌아가라.

오직 의자성을 절대 불퇴전으로 성취하라. 네 마음 하나 완성하라.

대 완성자여!

일체 有限世界를 정복하는 저 無漏의 대 지혜자여!

박두규 : 어리석음이 깊어서 큰스님의 자상하신 법문을 이제서야 알게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소서 [2007-08-31 20:08:29]
박두규 : 어리석음이 깊어서 큰스님의 자상하신 법문을 이제서야 알게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소서 [2007-08-31 2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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