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반성에 대하여 (도의 근본을 위하여) 아라한 2004.09.28
첨부화일 : 없음

眞實과 反省에 대하여 ( 道의 根本을 위하여 )


진실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원(願)이 섰을때 또는 필요할때 마음의 행동(心行)이거나 몸의 행동(身行)이거나, 진실이라는 행이 오직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성내지 않는다 하면 오직 성을 내지 않는 것이지 무슨 말이 필요한가.

바른 심행을 닦아서 그대로 심행처멸(心行處滅)로 가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에 부합하는 일로써 지혜가 가르치는 일을 내면으로는 거부하면서 거짓 대안으로 근사하고, 교묘하고, 간교한 말로 포장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비 진실한 것이며, 비 수행적인 것이며 비열한 행이다. 이같이 비열한 행위를 하는 자는 간교한 뜻과 말로써 자기를 합리화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에 속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 속한다. 그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는 한, 벗으로서는 멀리하는 것이 좋다.
마땅히 자신에게도 경계하고 남에게도 경계해야 한다. 말이 필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 진실이란 - 심행(心行)과 신행(身行)을 이르는 것이지 언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 반성이란 - 무엇을 그쳐야 하는 것을 바로 알아서 그치는 것이다. 무엇을 끊어야 하는 것을 바로 알아서 끊는 것이다. 자신의 일, 자신의 사로잡힌 생각에서 벗어나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 도(道)를 닦는 수행자 - 출가한 수행자에게 반드시 버리고 갖추어야 하는 경계가 있다. 비록 도(道)를 익혔다 하더라도 이것이 갖추어져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다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부질없는 것이다. 비유컨대 인격조차 덜 갖춘 자가 무슨 도(道)를 얻었단 말인가. 그러기 때문에 도(道)를 닦는 사람은 항상 자신을 깊이 살펴야 하는 것이다.

다음의 열가지 경계가 있다.

1. 증오하는 것과 사랑하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 저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싫고, 이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좋다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오직 업대로만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도(道)라고 하는 것은 말 뿐인 것이다. 사람으로서도 덜된 사람이며, 거짓 출가자가 되는 것이다. 삼독심, 즉 삼악도를 가고 있는 사람이다. 증애심을 끊어야 한다.

2. 싫어하는 소리, 좋아하는 소리, 싫어하는 냄새, 좋아하는 냄새를 버려야 한다. 집착할 만큼 냄새를 좋아한다거나, 어떤 냄새를 집착해서 싫어한다는 것은 이것은 심리학적으로는 일종의 정신적 질병이다. 다른 것이다. 정상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컴프렉스라는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신적인 허약자가 무슨 도(道)를 닦는단 말인가?

독사의 입에 들어가는 물은 독이 될수 밖에 없는것처럼 이런 어리석은 사람에게 들어가는 불법(佛法)은 더 독한 지식 뿐인 어리석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것은 보고 싶고, 싫은 것은 보기 싫어하는 이것이 가히 성격에 있을 정도이면 이미 이것저것의 집착의 뿌리가 있는 것이고, 역시 정신적인 질병의 일종인 것이다.

3.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 추하게 보이는 것을 공포스러워 하는 마음, 남의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남의 추한 것을 싫어하는 마음, 이같이 미·추에 걸리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과시, 또는 자기회피의 일종 현상이며, 일종의 과대망상적 버릇이 되는 것이다.

4. 자신을 지나치게 깨끗하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마음, 남의 깨끗함을 좋아하고 남의 더러움을 싫어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같이 청·탁에 노는 사람은 입으로 쉽게 남을 비난하게 된다. 남을 함부로 비난하면 악도에 가는 것이다. 청·탁의 경계를 끊어야만 비로소 향상할 수 있다.

5. 이런 것은 두렵고, 이런 이런 것은 두렵지 않다 라는 마음, 이런 양쪽의 마음을 끊어야 한다. 이 생각을 끊어야 참으로 참선할 수 있다. 이 생각이 남아있는 한, 한 생각도 이기지 못하는 자가 무슨 참선을 한단 말인가.

6. 호기심을 끊어야 한다. 호기심이 많은 자는 결코 공부할 수 없다. 호기심의 뿌리는 언제나 정신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허약하게 여기기 때문이요, 바른 참구함이 없기 때문이다.

7. 마음이 약한 자는 도(道)를 닦을 수 없다. 이것을 먼저 다스려서 치료하거나 극복해야 한다. 심약자는 신경이 민감하고 의지가 허약하며 남의 말대로 흔들리는 정서불안이 심한 법이다. 심약하고 신경이 민감한 사람이 이 정신적 질병을 고치지 않고 도(道)를 닦으려고 한다는 것은 진흙 수렁 위에다 큰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정신적으로 허약하여 오는 이 정신적 진흙 수렁은 마치 무저갱과 같아서 기초 조차도 쌓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참다운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의식적 믿음은 있지만 깊은 마음에는 전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8. 말을 자주 바꾸는 자는 도(道)를 닦을 수 없다. 약속 또는 말을 바꾼다는 것은 곧,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사정에 따라 늘 말을 바꾸는 자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착한 성품을 지니기는 했으나 마음의 안정이 없고 자신의 마음에 진실 또한 없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과 안락함만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의(義)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비유컨대 수천명의 목숨이 달린 명단을 자신이 자청하여 보관 하겠다고 해놓고 자신이 불리하면 그 명단을 내놓아 수천명의 목숨을 잃게 해놓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다. 즉 의(義)가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삼악도(三惡道)의 단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9. 특별히 마음써서 매일같이 양치질을 깨끗이 하고 매우 신경을 써서 손발을 깨끗이 닦으며 남이 양치질 하는 것의 유(有)·무(無)에 마음이 걸리는 사람은 도(道)를 닦을수 없다. 이같은 성격의 사람은 매우 소심하고 그리고 매우 이기적인 것이다.
누구나 사람은 어느만큼은 이기적이고 소심하다고 하지만 도를 닦는 사람은 아상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이기적이어서는 아니되고 소심하는 것은 도(道) 이전에 인간이 못된 것이어서 큰 흉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기에 늘 신경쓰고 의복을 깨끗이 하는데 마음을 쓰고 소일을 삼는다면 이런 사람은 경치 좋은 곳에 살기를 바라고 환경과 여건, 조건이 좋은 곳에 살고 싶어하며, 찾아 다니는 사람이다. 그러한 것으로 찾아다니며 허송세월하는 것이다.
이런 삶은 간택심에서 놀고 있고, 그 간택심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자이다. 비록 백년동안 참선 하였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간택심의 업(業)은 깊은 바다보다 더 깊을 것이다.

10. 말이 많은 자는 도(道)를 닦을 수 없다. 남의 이야기를 하고 험담하는 것을 반성하지 못한다면 더욱 도(道)를 닦지 못한다. 말이 많다는 뜻이다. 남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자꾸하는 자는 더욱 나쁜 사람이다. 남의 말의 허리를 자르는 사람 역시 말이 많은 사람이다. 정신적 수양이 없는 사람이다. 참선을 백년동안 하여도 역시 헛될 것이다.

여기서 말한 열가지를 고치지 못한다면 그대의 도(道)는 자기 기만, 속임수에 불과하다.
밝게 살펴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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