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이란 아라한 2004.09.28
첨부화일 : 없음

생사(生死)가 무상한 것을 지혜로서 바로 알고, "생(生)에는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다. 그 괴로움은 아무 보람 없는 괴로움이며, 꿈처럼 환(幻)처럼 보람 없는, 그저 허망한 자기 속임수에 자신이 당하는 괴로움이며, 그저 어리석은 애욕과 욕망으로 스스로 끄달리는 집착의 덧없는 삶이다. 생(生)에는 끝없이 그저 괴로움이 있고, 사(死)도 또한 끝없는 반복의 새로운 시작인 것을 바르게 살펴 알게 된 이가 간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도(道)를 구하고자 마음을 세웠을 때 이것을 발심(發心)이라 한다."

그리고 다시 또 간절하게 도(道)를 구하고자 하는 발심(發心)이 지극하여 오직 더욱 깊어져만 갈 때 이것을 불퇴전(不退轉)의 발심(發心)이라고 한다.
그대들은 언제나 이 불퇴전의 발심을 종(宗)으로 하여 생각하고, 이 발심에서 먹고, 잠자며, 생각하며, 공부하며, 오직 이 불퇴전의 발심으로 정진하는 것으로 자신을 삼을때, 생사(生死)를 뛰어 넘는 힘이 자연히 구족되는 것이다.
오로지 불퇴전의 발심으로서 정진하여 이 정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삼고, 자신을 삼는 이가 일체 중생을 평등한 마음으로 연민히 여겨 성불의 서원이 마치 들숨과 날숨처럼 조금도 물러남이 없이 성성할 때,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發)하였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퇴전의 발심은 곧 정진자의 두 다리가 되며, 아뇩다라의 마음은 정진자의 몸이 되는 것이다.

옛 사람은 말하기를

"대저 도(道)를 이루고저 바른 발심(發心)을 하였을때 이 인(因)이 부처로 간다." 하였다.

그대들은 이 말의 첫 구절을 마음에 새겨서 오직 불퇴전의 발심으로 모든 생각을 삼고 정진자의 두 다리가 되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정진자의 정신을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그대 자신의, 자신의 것인 몸과 다리는 없고, 마음도 없고 자신의 번뇌도 없고 자신의 삶도 없다. 인생도 없고 자신의 인연도 없고, 탐진치(貪瞋痴)도 없고 생(生)도 사(死)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오직 발심한 정진자의 다리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몸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발심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그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삼아라. 철두철미하게 이 도리를 익혀서 참으로 그러하게 될 때 그대는 진정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이루게 되리라.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했던 옛 사람의 말은 바로 이 초발심이 출가할때 첫 발심을 뜻하는 것보다는 평상심에서 증감(增減)이 없는 여여(如如)한 참 발심을 말하는 것이며, 이 참 발심만이 오직 참으로 정각(正覺)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참 발심이 바로 정각의 인(因)인 것이다.

깨달음의 별다른 인(因)은 없다.
어떠한 기술이나 어떠한 수행법이나, 거각법이나 또는 간경이나, 염불이나, 참선이나, 기도 또는 특수한 비법이나 수행법이나 어떠한 출중한 정진력도 모조리 깨달음의 인(因)이 되지는 못한다.
이것은 다 이 발심보다는 못하는 것이다. 오직 이 참 발심만이 길이 된다. 불퇴전의 참 발심만이 진정한 깨달음의 인(因)이 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의 도(道)에 향상(向上)이 없다고 한탄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가 이미 한탄하거나 좌절한다면 그대의 발심은 이미 퇴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수도생활의 평안함을 생각한다면 그대 발심이 퇴전하여 발심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수도의 정신이 타락한 것과 같다.

자신을 밝게 살펴서 철저하고 바르게 경책하여야 한다. 정진은 좋다. 그러나 그대 생각만을 지켜서 의지하여 가는 정진은 발심이 아닌 것이다.

발심(發心)이란 이미 무아(無我)인 것이다. 그러므로 발심이 없는 그대 생각으로 길을 삼아서 가는 정진은 죽은 정진과 같다.

다시 한번 자신을 경책하여야 한다. 이때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묵언면벽(默言面壁) 참회하는 정신으로 묵언면벽하는 자신을 철저하게 참회시켜서 끝까지 자신을 경책해야 한다. 오직 지혜로써 경책하는 것이다. 증감이 없는 지혜로써 참회가 되는 것이다.

바른 발심은 이미 위없는 용기이며, 이미 번뇌없는 지혜이며, 이미 평정한 마음 그대로 안심이 되는 것이다. 단지 감정적인 분심이나 한번의 욱 하는 생각이나 또는 감정이나 생각으로 발심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시작이 있으니 곧 지치고 만다. 다시 변한다.

생각은 나중에 다른 생각의 파도에 묻히고 또 다른 생각의 습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 사념(思念)의 성질인 것이다. 생각이 묻지 않은 이 지혜는 본래 생각과 관계 없는 것이어서 증감(增減)도 생멸(生滅)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러남이 없는 위없는 용기가 되는 것이다. 이 용맹심이 절대로 필요하다. 위없는 용기가 없는 정진자는 퇴전하는 것이다.

명심하여야 한다.
참 발심이 없는 정진(精進)은 저 나무인형처럼 조작되는 것과 같다. 별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음을 조작하며 정진이라는 행(行)을 조작하는 것이다. 그저 헛된 것에 불과하다. 혹, 당장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대 스스로 헛된 정진임을 마침내 분명히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어떠한 뛰어난 정진보다 이 발심이 먼저이며 오직 소중한 것이다.

지혜로써 발심하여야 한다. 철두철미하게 발심하여야 한다. 이것이 최우선이다. 이길 뿐이다. 오직 참 발심만이 깨달음의 인(因)이며,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길이다.

도(道)를 구하고자 하는 정진자여!

이 참 발심을 증득하라. 먼저 불퇴전의 참 발심을 이루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철저히 발해졌을때 그대는 이미 성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며, 그대는 이미 세존의 백천만겁난조우한 무상심심미묘법을 얻고 있는 것이다.

오직 그대를 지극히 연민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 가르침을 남기는 바이다.

이름 비밀번호
코멘트
이전글 : 우울증에 대하여
다음글 : 진실과 반성에 대하여 (도의 근본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