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염불리에 대하여 - 1 홈지기 201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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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념념불리 (Ⅰ)

1. 의식에서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념념불리는 마음의 모든 괴로움을 깨트려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2. 잠재의식에서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념념불리는 마음의 모든 괴로움과 깊은 마음속에 깊이 내재해 있는 생존과 생명의 불안정에서 오는 비애감을 깨트려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3. 무의식에서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념념불리는 생존과 생명의 불안정에서 오는 깊이 내재하여 있는 슬픔과 고독 외로움의 모든 고뇌 번뇌를 깨트려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4. 아뢰야식(첫 번째 자리, 우주의식의 자리)을 벗어나는 길이다.
념념불리는 정신과 마음의 부족함과 불안정을 향상시켜서 마음의 부족함과 불안정을 초월하여 마음의 절대적 경지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5. 아뢰야식(두 번째 자리, 함장식성의 자리)을 벗어나는 길이다.
념념불리를 닦는 마음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성의 작용속에 있다고 하는데 소위 편의상 이해를 돕기 위하여 쉬운 말로 일컬어지는 신성神性에 이르는 길이다.

6. 아뢰야식(세 번째 자리, 비상비비상처식성의 자리)을 벗어나는 길이다. 념념불리는 중생의 한계, 중생의 생존에서 작용하는 가장 깊은 정신적 속박 즉 절대적 속박인 번뇌를 깨끗이 벗어나서 해탈할 수 있는 길이다.


◉ 념념불리 (Ⅱ)

우리가 살아가는데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은 무엇일까? 막혀진 것이 너무도 크고 캄캄하여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그것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다.

첫째는 건강, 둘째는 돈 잘 벌어야 하고, 셋째는 시집 못간 딸도 시집을 잘 보내야 하고, 넓은 집도 한 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있는 것이 산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한 문제는 없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생존의 문제다. 이 생존의 문제를 가장 방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내 마음이다. 가령 여기에 내 마음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살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이 마음이 사라지면 살아야 하는 문제는 없어진다.

즉 이 마음이 죽어 없어지면 살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도 없어진다. 살아야 하는 문제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에서 위대한 빛을 내면, 다시 말해서 이 마음에서 상당한 사이클이 나오면 우주적으로 볼 때는 어마어마한 빛이 나온다. 이것이 어디로 가느냐 하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으로 통하고 일체 세상에도 통한다.

두 가지의 예를 들어보면, 첫 번째 내가 홍길동과 계약을 꼭 해야겠는데, 이 계약은 홍길동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런데 우연히 길을 가다가 홍길동이 나타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일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이튿날 홍길동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계약문제를 언급하니 홍길동은 두말하지 않고 승낙했다. 이렇게 계약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계약이 이루어지기가 무섭게 일이 진행되어 무사히 일을 마치고 대금도 잘 마쳤다. 그런데 홍길동이가 2차 계약을 다른 사람과 하였다. 나는 배신감을 느끼며 홍길동을 원망하였다.

처음 계약은 이익이 없어도 2차 계약을 보고 투자한 셈치고 열심히 해서 성공적으로 마쳤다. 2차 계획은 순전히 홍길동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끝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홍길동을 칼로 찔렀다. 그런데 마침 죽지는 않고 깊은 상처만 주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순간의 울화통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일이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생존이 있다.
생존이 있는 그날까지는 위에서 예를 든 경우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홍길동이가 계약을 해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 홍길동의 마음이 아니고 자신에게 있다. 내 마음에서 나온다.

홍길동이가 계약을 해주지 않는 것은 내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사이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홍길동이 계약을 해 줄 것인가 하는 불안과 걱정과 초조, 이런 것들로 내 마음 속에는 밝은 빛이 없다. 그러면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예를 들어 어떤 부부가 살고 있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자꾸 따지고 드니까 남편이 주먹으로 아내를 때렸다. 누구의 잘못인가? 아내의 잘못이다.
그러면 남편은 잘못이 없는가? 그 영향 때문에 더 엄청난 대가가 시작된다.

아내가 매일같이 따지고 달려들어도 얼마든지 무념(無念)으로 응대할 수 있고, 반대로 더 깊은 악(惡)으로 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편의 마음이다.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뒤집는다고 해서 남편은 분노로서 갚아야 한다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와 성질, 주먹 이런 것들은 또 다른 업의 시작이다. 먼저 일으킨 업은 아내의 몫이고, 주먹을 던진 것은 남편의 몫이다.

아내가 성질을 부린다고 해서 주먹을 날려서 아내를 때린다면 그 대가는 후일 엄청나게 돌아올 것이다. 자기가 일으킨 것은 절대로 자기의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처럼 계약이 잘 이루어졌을 때, 이것은 사실 홍길동이가 계약을 해준 것이 아니고 사실은 내 마음 때문이다.
이때 계약이 되지 않는 것도 내 마음 때문이다. 이것이 내 마음에서 나오는 “빛의 작용”이다.

빛의 작용이란 무엇인가?
빛의 작용이 잘못 나가면 계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일어난 빛의 작용들을 홍길동이가 감지해 내는 것이다. 의식에서 감지하는 것이 아니고 잠재의식이 감지해서 의식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다.

계약이 잘 되는 것도 내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사이클이 좋은 것이다. 그것은 내 눈이 반짝 반짝 빛나고 어딘지 모르게 의리 있어 보이고 느낌이 신선하고 좋아서 무엇인가 도와주고 싶어 한다. 잠재의식의 마음이 그렇게 작용해서 의식의 마음으로 전달된다.

여기서 이해를 해야 하는 4가지 마음이 있다.

1. 의식에서 나타나는 사이클의 작용이 있고
2. 잠재의식에서 나타나는 사이클의 작용이 있고
3.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사이클의 작용이 있고
4. 그 속에 내 마음 더 깊은 마음속에 우주의식의 작용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99%가 아뢰야식 즉 우주의식의 작용이며, 나머지 1%를 가지고 0.9%는 무의식의 작용이고, 여기서 다시 0.09%는 잠재의식의 작용이며, 나머지 0.01%가 의식에서 나타나서 나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의 일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서 나타나는 내 마음의 작용이다. 그 0.01%의 마음속에 내 마음이 100%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속을 뒤집는 것은 여자의 업이다. 남편은 화를 낼 것인가? 도리어 웃을 것인가? 이것은 남편의 몫이다.
여자의 본능이란 이유야 어찌되었든 있는 대로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려본다. 악(惡)이 되는 길을 먼저 선택한다.

여기서 지혜작용과 본능작용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본능작용이란
여자가 본능작용을 일으키면 업이 발생한다. 여자도 살인 본능이 있다.
둘째, 지혜작용이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든 일을 알면서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천 번을 반복하면서 오로지 기도로 응대한다. 지혜작용은 해결의 길이다.

본능작용 = 업작용이다. 지혜작용 = 향상작용이다. 지혜의 작용보다 훨씬 더 좋은 도(道)작용이 있다.

도작용(道作用)이란 도작용을 일으키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최상승 도리로서 최고의 길이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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