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신분상승(베르베르..,첨가) 돌도사 2008.12.15
첨부화일 : 없음
우리는 언제나 어느곳에나 삶이란자체가 주종관계나 노예생활에 바탕을 두고있다. 앞에서도 시지푸스 신화를 이야기 했듯이 삶이란 자체가 그렇게 묶여서 전력투구를 해야만 하는것이다.

그 많은 역사속에 주종관계와 노예신분탈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던가? 루터와 칼뱅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많은사람이 피를 흘리고 기존종교는 신흥종교를 엄청난 수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기존종교는 제왕처럼군림하고 왕들도 교황에의해 임명될 수도 있는 절대적인권한이였다. 평민이나 농노들은 지주에 의해 모든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했던것이다
러시아에서도 레닌에의한 혁명이 아니였더라면 농노들이 신분이 상승되었을까? 러시아는 당시 붕괴직전에 있었던 러시아를 레닌에 의해 급상승하여 유럽과대등한 강대국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레닌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레닌같은사람은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람이라고 추앙하고있다
어떤 러시아 학자는 말하고 있다.
"레닌은 농노에게 토지를 주었을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에 자유와 문화,교양은 물론 안정감까지 안겨주었어요 모든사람들은 역사와 국가앞에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레닌은 일깨워 주었어요"
신경제 5개년계획과 과학을 발전시켜 서방세계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 놓았던것이다. 아마도 레닌에의한 발전이 없었더라면 제3세계의 수준으로 히틀러의 침공으로 쉽게 러시아는 점령당했을것이다.
한때 러시아 경제와 과학으로 로켓이 달나라 가고, 미국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었던것이다.그모두 레닌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봐진다.
지금 모든사람들은 공산주의는 실패작이라고 모두 말하는 것을 듣는다 하지만 그때당시엔 레닌과같은 방식이 아니었다면 러시아가 발전은 불가능한 것으로 봐진다 그때당시엔 그것이 하나의 극약처방이였던것이다. 극약처방은 장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극약이 들어간 처방은 가장빨리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장복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영국의 신교도들은 기존의 종교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운나라가 미국인 것이다. 독립전쟁도 일종의 주종관계의 신분탈출을 선언한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며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있다"고 말 해 놓고 있다
그르면서 그들은 많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가 소처럼 끌고 와서 짐승처럼매질하며 부려먹고 착취하여 그들의 부를 쌓았던것이다.많은 유럽세계의 식민지쟁탈전은 총칼로 앞세워 약한나라는 짐승이나 소처럼 아무런 대가없이 일만해야 했던것이다.
말만 자유,평등...,
그들은 처음 미국땅에 밟을때 먹을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을때 인디언들에 우호적으로, 먹을것,입을것을 도움받으면서도 끝내는 총칼로 인디언들을 다 내쫓고 학살하고 완전히 인디언 씨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지금도 금광이라도 발견되면 어떤 보상도없이 총칼로 짐승사냥하듯이 학살하고 내쫓아 버리고,지금도 미국엔 인디언의 종자나 남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돈있고 힘있는 사람은 이와같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 사람이 평등으로 안보이고 짐승으로 보이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현대인들은 기계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포드자동차는 자동컨베어시스템으로 3초마다 한대씩 나온다고한다 인간은 옆에서 같은일만 반복적으로 하는것이다 일초라도 손이빠지면 전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한사람이 종합적으로 여러가지 일을했는데 이젠 자동컨베어 시스템으로 마치 한개의 기계부속품처럼 한사람이 하루종일 한개의 작업만 계속반복적으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고있다
"너무재미없고 단조롭고 마치 자기가기계부속품같다"고호소한다

이 사회도 하나의 거대한 기계구조인 것이다. 개인은 부속품이 되어 전체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절간에서도 밥하는 기계는 반복적으로 밥만해대고 목탁두드리는 기계는 시간만되면 똑딱, 똑딱하고
이런기계를 총괄하는 기계도있고

음악 시디, 강연시디 설법시디 세상은 온통 기계판이다.

이와 같이 인간 복제시디는 인간 상품시장에 엄청난 수요에 보급되고 있는 것이다.

복제양 돌리처럼, 인간도 세계적인천재들의 정자를, 종자은행에 냉동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없는 사람은 신청만 하면 천재아들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미래는 머리나쁜사람은 도태되고 천재들만 지구상에 가득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앞으로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도 선진국에서는 생각하는 로봇을 구상중인것같다
여기 다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작인 <나무>라는 책엔 언어와 생각을 가진 로봇이 일상생활을 그려놓고 있다 커피는 자동으로 끓여지고 기계들이 먹을것도 입에넣어주고 옷도 입혀주고 넥타이도 걸쳐주고 온통기계로봇의 일상생활이다 로봇이 서로말하는것을 밑에 옮겨보겟다
"내앞에 있는 당신은 한낱기계 일 뿐이면서 감히 다른기계들을 심판하고 있어! .., 그대들은 영혼이 있는가? ...,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에게 진정 영혼이 있는가?..., 잘난척할 것도 없고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이건 흔해빠진 모델이야....,나역시 당신과 똑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어 지구상에 진정으로 살아있는 유기체가 존재하지않게된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야 우리는 모두 기계야.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그런환상을 품도록 우리뇌가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야. 땅콩 자동판매기와 당신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뿐이야. 꿈에서깨어나야해"


아 우리는 이 노예 생활을 빨리 벗어나 자유를 얻어야 한다
역사의 많은사람들이 노예가 자유를 얻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듯이 마음도 오욕에 관습되고 중독화되어진 마음을 혁명과 봉기하여 일으켜새우기는 여간 힘든것이 아닐 것이다 크나큰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古人이 云하되 "三界의 아득한 하나의 큰 감옥속에서 쇠사슬에 묶인 노예의 생명체들은 한없이 고통받고 있구나!"

이것은 삼계를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벗어 날 수없는 하나의 큰 감옥으로 본것이다. 앞에서 나는 시지푸스 신화를 언급했지만 우리들의 생명체들은 그와같이 六途에 반복하여 윤회하는것이다. 그르므로 우리는 모두 삼계를 벗어 날 수없는 쇠사슬에 묶여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마치 시지푸스 신화와 같은 노예들인것이다.

불교에 <岸樹井藤>이라는 관용구가 있다


< 어떤 남자가 광야를 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 쫓겨 우물속으로 피하게 되었는데 우물안으로 드리운 칡넝굴에 매달려 밑을 보니 4마리의 독사가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위에는 흰 쥐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남자가 매달린 칡넝굴을 쏠고 있는데 위에서는 덩굴의 벌집에서 꿀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생명이 위험한 상황을 잊고 꿀의 맛을 즐기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여 무상 및 무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이야기다.


몇 십년 전에 용성스님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살 수 있겠는가 ?" 하였는데 당시 많은 스님들이 그에 대한 답으로서,


"아야, 아야."

"어제의 꿈이니라."

"언제 우물 속에 들어갔던가."

등의 답을 하였다.

이때 전강스님은 "달다."라고 답하여 칭찬과 주목을 받았다



광야는 생사(生死)를 비유하며 그 남자는 범부(凡夫)를 비유하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비유하며 언덕위의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 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비유합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비유하고 [그 쥐들이] 니무 뿌리를 갉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순간순간 줄어드는 것을 비유합니다. 네 마리 독사는 사대(四大)를, 꿈은 오욕(五欲)을 비유하며 [그를 쏜] 뭇 벌들은 나쁜 생각과 견해(見解)를 비유,또 들불(野火)이 타는 것은 늙음을 비유하고 아래 있는 독룡은 죽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 비유는 몇방울의 꿀 맛에 도취되고 집착해서 삶의 실상(實相)을 잊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존(實存)하는 인간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적나라(赤裸裸)하게 설파한 설화(說話)로서 짝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리 인간은 꿀에 취해가지고 순간의 뒤에 쓴맛을 모르는가?

나는 이제 누가 나에게 "꿀 좀 줄까"?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싫소"!하고 대답 할것이다

혹시 단식하고, 하루에 콩가루 한 숫갈 먹으며 수행하는 회원이 있다면 가입하고 싶은 소망이기도 하지만....,

<안수정등 >그것은 위로 보아도 아래도보아도 탈출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앞에 조선말 6대 선지식들의 법답을 들어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탈출하는 해답이였는지 모르겠다.
이런것이 조주"無"字화두보다 더 의미심장한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 본다.

이것이 <안수정등>에서 그 노예인 죄인이 탈출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백척간두에 진일보하여 우주도 없고 나도 없는 텅빈 경지를 지나야 비로소 바로 탈출하는 방법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가 노예인것이다.
모든 불경에 또는 조사들의 어록에 우리들의 몸을 주인 잃은 노예에 비유하고 있다.
나의 진짜 주인은 노예가 되어있고 가짜 도둑이 주인노릇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가짜도둑을 몰아내고 진짜주인을 찾는 것이다.그것이 노예가 신분상승하는 길이요 삼계의 감옥을 탈출하는 길인 것이다.또한 우리 불교의 목적이다.
우리는 현재지금 가짜주인의 도둑놈에 의해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쾌락과 오욕락에 이현실이 그냥 그러한 것인냥, 이것이 우리들의 주어진 삶인냥하고 살고 있을뿐이다.
우리들의 몸인 六근은 육진에 미혹되어 노예가 되어 그것으로 인생을즐기며,인생의 전부인양 하고 살 뿐인것이다.
잘먹여주고,입혀주고 잠재워주고 잘해주어도 언제나 배반의 쓴 아픔의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이 노예에서 신분상승을위해서 루터와 칼뱅처럼,민중봉기를 해야한다.마음의 혁명을 해야하는 것이다.
루터와 칼뱅처럼 종교의 노예로부터 "자유, 평등,박애를 찾아야 할 것이다.

ㅎㅎ : 마저 기계가 사람을 심판하내요 ㅎㅎ [2012-02-11 0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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