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에 대하여 돌도사 2008.11.09
첨부화일 : 없음
때는 바야흐로 울긋 불긋, 아름다운 산천이 온통 단풍으로 채색되어 등산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노예, 머슴신분은, 신분상승을 꾀해보고 싶기도한 그런계절로, 그것은 머리가 돌머리인<쥬리반특가>가 아라한이 된 신분이된 계절이기도하고, 궁중의 노예가 출가하여 아라한이되여 다시 부처님따라 궁중으로가자, 궁중사람들은 "노예한테 공양 올릴 수없다"고 하자 아라한들은 기러기처럼 하늘로 날라 먼 다른 세계에 공양을 가지고와서 공양을들자 ,그제사 신통을보고 놀라서 궁중 사람들은 뉘우쳐 귀의한 진실의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아!~ 이 계절의 얼음에 맺힌 참 울음의 물 방울로 그대의 쌓임의 돌다리 길 옆에 똑딱, 똑딱 소리내며, 내맘도 얼음이되어 목메여 메아리의 울림으로 향하고 싶습니다.

나라는 한 인간이 이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수억의 정충과 싸워서 하나가 선택되어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같이 삶이란 곧 도전이며,싸움의 시작과 끝이다.
시지푸스 신화처럼 그것은 하나의 인간의 운명을 예시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산 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려서 올려놓자, 다시 허무하게 보람도없이 굴려서 내려 가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올려 놓아야하는 반복된 우리들의 인간의 운명의 쇠사슬이기도 한 것이다.
허무한 싸움을 왜 힘겹게 도전 해야만 삶이 유지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뼈빠지게, 힘겹게 한푼없는 빈한한 삶에서 재산을 이루어 거부가 되어도 인간은 누구나 죽어 가는 것이다. 정주영씨도 돈 없는 촌부로 쌀장사로부터 시작해 돈을 모았다고 들은바가있다. 그렇게 제일가는 거부가 되어도 죽을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시지푸스 신화처럼 다시 저 정상을 위해 돌을굴러 올려야만 하는것이다.
어떤 한 인간이라도 노력하지않고 삶을 유지하는 것은 보지 못했을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삶의 정지를 말하며 정지된 삶은 있을 수없다. 정지는 곧 죽음을 말하며 죽음까지도 꿈속에 싸움과 같은현상을봐야하는 것이다.
법신은 곧 형체 없음을 말하며 형체없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부처가되기까지 끊임없고 무한한 도전의삶을 겪어야하는 부처님전생사를 봐도 알 것이다.
부처님이 성도하기 직전까지도 마왕파순의 궁전이 흔들리자 마왕파순이 권속을이끌고 나타나 하늘에 아흡용과 화살 총 대포를 쏟아부어도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정진은 중생을위해 한없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 전생설같이 배고픈 호랑이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찢어보시하는 이런설화가 있듯 그것은 한생이 아니며 끊임없는 이와같은 정진이며 정진이 곧 도전인것이다

사자는 백수의 왕이지만 강을 건너다가 악어한테 잡아 먹히는것을 TV를 보고 알고 있고, 하이에나에 쫓기여 언덕에 굴러떨어져 볼품없는 신세를 보았다.
왜 사자가 도전 받지 않는가
젊은사자가 암컷을 차지하기위해 기존의사자에 도전하는것은 TV를 통해 알고있다. 기존의사자는 힘이 없으면 싸워서 죽던지 밀려나는 것이다.

우주의 어떤 현상도 도전받지않으며, 도전하지 않는 물체는 없다고 본다
오늘날 천문학의 발달로 앞으로 있을 우주의 운명까지도 천문학자들 예시하는 것을TV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 은하계가 "안드로메단"가하는 다른은하계에 충돌 할 수있다는 그래서 약한별은강한별에 침식당하는 적자생존이 력력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이것을볼때 현상지어진어떤물체도 도전받지않는 물체는 없으며, 도전않는 물체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우주를 불교에서는 성,주,괴,공한다고 한다.
우리의몸도 끊임없이 병균과싸워 이겨서 지금에 형상유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병균이 정상세포를 이기는 날이면 우리는 이세상을 마지막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의사들 말로는 사람은 누구나 암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들고 표면으로 나오는 날이면 우리는 끝장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모두가 세속적 의미의 시지푸스 신화로 보지않아도 우리는 출세간의 의미로도 우리는 돌을 굴러 올려야만하는 정진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굴러떨어지지 않는 의미의약속 그정상은 열반이라는 의미의약속을기약하고 있는것이다.

보살은 중생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인욕선이였을때 가리왕이 몸을 갈기갈기 찢어도 무아상무인상햇다는 부처의 전생설이, 이것이 인욕이라는 우리 범부들은 감히 흉내도 못내는 어마 어마한 인욕의 도전과 노력과 정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리불이 보살도를 행할때 어떤 더럽고 냄새나는 거지같은 사람이 사리불한테 구걸하로 온것이다
사리불은 그사람한테 "당신은 무엇을 얻어로 왔오" 하자 그 거지같은사람은 사리불에게 "나는 당신의 눈알을 얻고 싶소"하는 것이다
그르자 사리불은 서슴없이 눈알을 뺏어 그사람에게 주자 그사람은 필요한곳에 쓰는것이아니;라 땅에 내 팽개쳐서 발로 밟아뭉개서, 가래침을 "택"하고 받는 것이였다. 이것을보고 사리불은 참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 저렇게 무지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어떤이익이 될것인가 내 차라리 내 스스로 수도하는것만 못하리다. 하고 맘이 변한 것이였다.이래서 사리불은 보살도에 들지 못하고 소승에 전락했다는 사리불의 전생설이다.이것은 일종의 도전에 실패작이라고 봐야하는 것이다.
부처님도 만인에게 싸움은 이길수 있어도 자기와싸워 이기는 것 이것이 진정 대장부라 한것이다. 나와 싸움 ,이것이 진정한도전이며 정진이며 "誠"의 의미며 노력인것이다
세상의 운명은 시지푸스 신화처럼 허무한 반복이지만 우리들 불교의 운명은 무거운돌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도전만 있고 다시 굴러 떨어져 허무한 반복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과 저 영원을 향한 영원한 도전과 약속이다


예전에 성철스님이 돈오돈수설을 설하자 동국대 교수로부터 미국주재 한인교수, 호주주재 한인교수까지 불교신문을 온통 신문8면이 성철스님 반대적인 공격으로 꽉 꽉메어져 연재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성철스님은 시비에 얽히지 않고 참선 삼매경계에만 드셨는지 모른다.
그것은 돈오돈수설은 보조사상에 위배된다는 교수들의 들고 일어남인것이였다.
소위 한 소식 했다는 성철스님이 그리고 방장이라면 사자의 자리를 대표하며 전승려를 대표하는 산중 조실인것으로 난 알고 있는데 마치 앞쪽에 말한바 있는 하이에나에 쫓겨 언덕에 굴러 떨어지는 볼품없는 사자를 연상해서 불쌍해보이기까지 한적도 있었다.

나는 98년인가 하이텔 불교동호회 가입한적이 있는데 그기 법장스님이라는 분이 있었다.나는 그법장스님이 현재 동국대교수라는 정성본 스님이 혹시아닌가 생각해본다.
법장스님은 당시 하이텔 무림의공적이였다. 온톤 불교를 비방하는 불평객이였다. 지식은 상당하여 불교 동호인들이 다 달려들어도 마치 조자룡이 한손으로 백만대군을 물리치는것 같았다.
육조도 비방하면서, 현재 승가들의 돈오돈수땜에 전승려들이 막행막식하며,계율도 직히지않으며, 학문도 닦지않고불립문자 운운한다고 즉 육조같은 사람은 없어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용운도 비방하여, 적지않게 놀랐다 이유인즉 한용운이가 조선총독부에 건의하여 전 승려들을 대처승으로 만들려 했다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들어대니 말문이 막힌 사실이 있었다.
우리들은 법장스님을 불평객으로 몰아 끊임없이 논쟁한적이 있다
나하고도 만히싸운 기억이 있다
오늘 현재는 우짠일인지 그와반대되어 내가 불평객으로 혼자 떠들고 있는 느낌이 드는것을 예전 법장스님을 생각해본다


나는 아프리카인가 남미인가 지역은 잘 모르겠으나 불개미때를 TV를 보여줘 알고 있다.
나는 이 불개미 때가 백수의 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아니 지구상에 무적으로보고 싶은것이다
불개미 군단이 지나간곳은 생명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풀도 없고, 녹색도 없고 완전 초토화인것이다. 사자같은것은 단 몇분이면 뼈다귀만 남지 않을까 생각해본 것이다.
그리고 남미인가 열대지방에 강물에 "피라나"인가하는 물고기때는 정말 무섭운 물고기를 TV를 보고 알고 있다 나는 이 피라나 물고기가 상어나 고래보다 무적의 백수의 왕으로 봐도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대한 황소도 단 몇분이면 뼈만 남는데 사자는 무슨 쓸모가 있을까 생각해본다.이것으로 볼때 백수왕이라는 것은 말 뿐인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시대는 이 피라나의 물고기때나 아프리카 불개미때처럼 다수가지배하는 시대가아닌가 난 생각한다.
아무리 부처님 같이 깨달았다는 사람이 나와도 소귀에 경읽는 격이될것이니 무슨 소용이있을것인가
부처님당시엔 한번말하면 천을 알아들어 깨달았다 해서도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어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려니 아무도 알아줄 사람이 없어 곧 열반에 드실려고하자 범천의왕이 고구정녕 만류해서 49년 설법을 하셨다는 말도 알만한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더 깨닫는 사람이 없는데 부처가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이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해본다.

그르므로 현대는 다수의 시대며, 다수에의해 떠밀려가는 시대인것이다.다수가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촛불시위로 민중이 아니라면 아닌것이다.아무리 내용이 진실이어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다수는 겉 표면만 볼수도 있는대중심리의 선동이 될수도 있다

소동파와 조과선사의 대화처럼 불법은 간단하다.
소동파가 불법이 무엇입니까 묻자 "악을짓지않고 선을행하는 것이다"하자 소동파는 "그말은 3살 먹은 어린애도 하겠다"
그르자 조고선사는 3살먹은 어린애도 알기알지만 80먹은노인은 행하기어럽다"한것이다
박식한소동파가 하나를 직히는 조고선사의 말에 어찌 깨닫지 못했겠는가
결국 뜻이 많으면 흩어짐이요 하나를 직히면 전체를 포섭하는 것이다.

괜히 마니 배웠다 해가지고 장광설로 널어놓아 설명이 어려운것이다.
귀에 붙이면 귀고리요 코에붙이면 코거리인것이다
약방에 감초처럼 안들어간데가 없지만 쓰임에따라 다른것이다
이미정해진것은없다. 내가 임기응변에 사용하면되는 것이다.
삼국지에 그 뛰어난 제갈공명이 사마중달을 왜 무서워했을까
말하자면 유비는 유교적인 인의예지에 경직되어 있었고,조조와,사마중달은 임기응변에능했기에 광대한땅과 백성과 군사를 유비에 능가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손가락을 잊어야한다. 이미 불법을 알면 불법을 버려야한다.
바둑에도 정석을 알면 정석을버려라 하는 격언이 있는 것으로안다

무슨 전통이니 보조사상에 위배되니 다 갔다 내버려야한다.
미안한 말 같지만,난 누가 "옛사람이 씹어먹고 맛본 것을 싸질려 놓은 배설물"에 비유한 것을 적절한 표현이라고 동감하는 바이다.
배설물은 화장실에 가서 봐야한다 아무데나 싸질려놓으면 여러사람이 불편하다.

선불장의 본지풍광에서는 되도록 냄새나는 화장실은 멀리두어야한다
볼일 있을때만 잠시 들리는곳이다.

왜 제도와 형식과 구태의연한 껍질에 메여 있어야하는가?
마치그릇속의 내용은 상관없이그릇기구의 형식만 따지고 이러니 저러니 사람의 행동을 경직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도 어떤 한 마구니를 제도하고 다시 그를 마구니 굴속으로 돌려보낸적이 있다.그들속에 마구니 생활을 같이 생활하며 살면서 방편에 따라 제도하라는 의미도 있을것이다
방편은 불교가 아닐수도 있다. 보살이 그사람 근기에 맞는 서양사람에겐 예수로 태어낫다면 기독교라고 하는거와 같은것이다.

다음 아레는 "도전"의 의미가 담긴 내홈에서 전에 써 놓았던 글을 여기 옮겨본다.


미국에 "행위예술가"거리의마술사<데이비드 블레인>은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 현재 미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고있다. 엄청난 군중이 몰려 있는가운데 어떤 소수가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사방이 얼음으로 덮혀있는 사각의통속에 60시간을 아무것도 안먹고 견딜 수있는가고 제의했다. 그르자 그는 선뜻 자신을 시험의대상에 오른 것이다.
그는 얼음벽속에 들어가기 전에 말 하기를
"세상에 목숨 걸만한 도전이 없는삶은 살 가치도 없는 것이다"하고 말 하면서 작심한것 같은 각오로 얼음벽속에 들어간다.
그는 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앉아 있지 않고, 서서 있는 것이다. 많은 군중은 유리같은 투명한 얼음속을 그를 직혀 보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말하기를 저체온으로 내려가면 사망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3일후에 생생하게 걸어 나온 것이다
그렇다 이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행복을 위해 모두가 움직이고있다. 모두가 쾌락을 위해 좀더 편한 생활을 위해 고통을 싫어한다.이것을 불교에서 세상을 "五欲樂"이라고한다.재물과 여자와 음식과 명예와 목숨, 세상은 온통 이것 자체의 의미인 것이다.만일 어떤 성인군자라도 이것을 빼앗는다면, 그는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며, 자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것을 위해 투쟁하며, 남의 것을 빼앗고 나라는 나라끼리 전쟁을 하고 있지않는가?나는 새도 자기 영역을 직히기 위하여 외부에오는 새를 싸워죽이는 것을 나는 동물의세계TV를 보고알고있다 .<오욕락> 그것은 어찌보면 저 식물들이 영양분을 빨아들이므로써 자신의 생이 유지되는 자연의 법칙이며, 자연적인 본능인 것이다. 왜 이세상의 자연적인 법칙의 하나로 저 숫사슴이 다른 경쟁자를 싸워 이겨야만 자신의 존재를 인식되는 것일까? 저 숫사자가 다른경쟁에 싸워 지면 그는 죽는 것이다.설사 살아 남는다 해도 그는 존재의 가치를 못느낀다.짐승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싸워 이겨야만 비로써 자신이라는 것이 인식 되는 것이다.지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비참함, 고독,왜 살아야 되는지 의문 스러워 지는 것이다.
그르나 우리는 단순한 존재의 본능을 인식하기 위하여 목숨 거는 것보다, 무엇보다 진실한 무엇을 위해 목숨 거는것, 그 얼마나 인생이 보람된 삶이 아닐 것인가 ! 설사 그것을 위해 목숨을 잃는다 해도 진실한 것이며, 의미있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 단순한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무엇인가 진실을 위해 투쟁하며, 고통을 느끼며, 하는 삶이 행복인 것이다.진실이 없는 삶은 순간이 행복한듯 보이지만 거짓의 거품처럼 포말되어 갈뿐이다
원각심 : 이곳을 변함없이 지키고 계시는 분이 계셔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2008-12-23 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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