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음주 돌도사 2016.12.01
첨부화일 : 없음
(나의 글을 삭제 하엿길래 그래서 다시 남의 자존심 상하는 말은 삭제하고 원효의 이야기만 하려햇다)


나는 단지 세속인이 바라보는 원효의 음주를 나의 관견을 피력해보고자 함이다

원효도 술먹고 일반사람들과 같이 실수햇다는 말을 하기에 난는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해보고자 함이다



TV에 나오는 " 낭만논객 "김동길 박사님 말씀에 "음주의 망언은 취후에 후회한다" "< 醉中妄言醒後悔(취중망언성후회>"물론 TV보니 음주의 망언에 신세 조진 사람, 많은 것을 본다. 예전에 주병진도 그랬고 , 윤창중도 미국가서 술먹고 실수하고, 국회 의장 박희태인가 성추문설등 등, 이병헌등, 요새는 자고나면 맨날 성추문설 등은 대개가 음주후 실수인것이다.
원효가 세속 사람들처럼 "음주후에 요석공주와 실수 했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원효는 대안대사와 술먹기 전에, 요석공주와 실수하기 전에도 원효는 거리에 다닌면서 이런노래를 불렀다한다." 자루없는 도끼를 누가 빌려 줄것인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찍을것인데!" 이것은 그가 요석공주를 만나기 전에 이미 예언적 선견지언의 노래였던 것이다. 원효는 무덤속의 해골물 먹고 당나라 유학도 그만두고 일체 무애인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그의 사상이 180도로 홱! 바꾸어 져 버린것이다.

★(첨가) 즉 말하자면 自利는 상구보리,利他는 하화중생의 진실한 보살도를 실천하려고, 산을내려가 세속속으로 들어 간 것이다. 즉 下山 한 것이다.계행을 직히는 소승적관념을 버리고 중생구제하로 세속행을 나선것이다. 이와 같이 진정한 중생구제는 자신부터 깨달아야 중생들을 구제 할 수 있고, 마음에 계행이란꺼림직한 굴래의 행위들이, 두려움이 없이 행할수 있는,그런 맘이 생기는 것이다.그래서 원효는" 일체무애인" 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바가지를두르리며 거리를돌아다녔던 것이다.

★(원효의 무애가 인터넷 복사)(포항시 오천읍 오어사(吾魚寺)와 오어사에 보관되고 있는 원효가 쓰던 삿갓

오어사는 원효와 혜공이 탈속의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무애가(無碍歌) - 길거리에서 표주박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원효스님

무애가(無碍歌)란 신라시대 원효(元曉, 617~686)가 지었다고 하는 불교가요로 제작연대는 미상이고, 가사도 현전하지 않는다. 다만 노래의 유래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원효불기조(元曉不羈條)와 파한집(破閑集) 권하(下)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애(無碍)’란 화엄경(華嚴經)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에서 유래한 말이다.

一切無碍人(일체무애인) 모든 것에 거리낌 없는 사람만이

一道出生死(일도출생사) 한길로 생사의 번뇌를 벗어날 수 있으리


원효가 파계하고 한 때 속인 행세를 하며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일컬을 때, 광대들이 큰 바가지를 들고 춤추며 노는 것을 보고 그 모습을 본떠 무애(無碍)라 이름하고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며, 불교를 민중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효는 당시의 승려들이 대개 성내의 대사원에서 귀족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지방의 촌락, 길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무애호(無碍瓠)를 두드리고 화엄경(華嚴經)의 "모든 것에 거리낌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도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을 널리 알려 일반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움막속의 거지나 더벅머리 아이들 까지도 불법을 알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방법으로 서민의 교화에 나선 것은 학문적인 구법(求法)을 위한 입당을 포기한 후 심법을 깨달은 뒤이며 요석공주(瑤石公主)와의 실계(失戒)로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자칭하던 때 이후로 보여진다. 그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후일 대학자가 된 아들 설총(薛聰)을 두었다. 그가 스스로 소성거사라 부른 것은 실계로 인한 속죄의 한 방법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대중교화의 방편으로 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대중교화의 선구자인 혜공(惠空)이 등에 삼태기를 지고 길거리에서 대취하여 노래하고 춤추었던 것이나 대안(大安)이 특이한 옷차림으로 장판에서 동발(銅鉢)을 치면서 "대안 대안"을 외친 것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교화의 행적을 마친 뒤에는 다시 소성거사 아닌 원효화상으로 돌아가 혈사(穴寺)에서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무애무(無碍舞) - 순조 무자년(1828) 「진작의궤」소재


한편, 파한집의 기록에는 원효가 파계했을 때 호리병박을 어루만지면서 저자(市)에서 노래부르며 춤추니, 이것을 무애라 하였고, 뒤에 호사자(好事者)들이 호리병박에 금으로 만든 방울을 달고 채색 비단을 장식하여 두드리며 음절에 맞게 춤 동작을 하고 여기에다 경론(經論)에서 가려 뽑은 게송(偈頌)을 지어 이것을 「무애가(無碍歌)」라 했다. 밭가는 늙은이들까지도 이것을 본받아 놀았다고 한다.

고려 때 이 노래는「무애무(無碍舞)」로 바뀌어져서 궁중의 정재(呈才) 춤의 하나로 되면서 기녀가 창하였고, 조선말까지「무애희(無碍戱)」라 하여 무악(舞樂)으로 전승되었다.)




깨달아야 중생들에 진정한 복전이 될수 있는것이다.福田은 應供이니 남에게 공양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공양을 올리므로써 불가사의한 공덕이 생긴다는것이다. 福田이란 중생을 만나기만 해도 중생제도가 되는 것이다.아무런 불교적인 지식이 없어도, 아무런 설법을 할 수가 없어도 이미 복의 밭이될수 있는것이다. 저 쥬리반특가는 머리가 얼마나 나쁜지 부처님이 일러주신 게송 한구절도 못외워서 앞구절외우면 뒷구절 잊어버리고, 뒷구절외우면 앞구절 잊어버리고 하였지만 아라한과를 얻어서 모두과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저 <벤허>의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채찍을 맞으면서 골고다산으로 끌려가는것을,벤허의모친과누이는 크게 사랑하는 (마음으로,벤허는 예수에게 마실 물도 갖다가 예수에게 마시게 하였다) 바라보기만 해도 그의 문둥병이 다 낫아버리는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것이다. 중생이 중생을 구제하는것은 배의 방향키가 없는거와같다.그것은 테레사의수녀처럼 인천인과교의복진타락의 윤회를 면치못하는것이다,나만 해탈 못한 것이 아니라 남까지도 전도된 행위로 망가뜨릴수 있는 것이다. 지금사회에 사목자들이나 광신도들의 시위 행위처럼, 남까지 그릇 길을인도하는 전도몽상의 행위를 하는것이다고,. 진정한 인도자가 될수가 없다는것은 자신이 어떤 치우침의 망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남을 인도하기 때문인것이다. 三途 出沒과 六途升降은 憎愛取捨心이 원인이된다고 하였다.마치 유병언의 교세확장처럼,,,,.그것은 진정한 중생제도가아닌것이다.보살은 아직 "중생"이라 말 할 수 있지만, 그냥 중생이 아니고,깨달은 중생이라 해야 맞는 말 일 것이다. 이미 중생이 아닌, "解脫衆生"인것이다.보살을 번역하기를 "깨달은 중생"이지 그냥 "중생"이라고 말 하면 안된다 .

원효가 말한 "大乘" 은 대승의 體를 말 한것이다. 대승을 일심의 心體를 말하며,즉 심체는 우주를 둘러싸고도 남음이 있다했으니 크다는 뜻이다. (즉 心眞如는 一法界 大總相 法門體라)말 했으니, 마음이 곧 우주 자체 진리요체를 말함이요. 즉,用은 가르침이나, 믿음이나, 일심으로 정진하는, 수행하는 것은 用을 말하는것이다.用은 곧 "乘"이되는것이다. 그것이 제불보살의 利他행위 인것이다. 곧 自利利他의 乘인 것이다. 자리이타는 수레의 두 바퀴 인것이다.그래서 一心으로 돌아가면 진여 해탈에 돌아 갈수 있다는것이다. 원효도 말 하기를 "論을 짓는 목적은 모든경계를 길이 쉬고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게 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곧 일심에 돌아가는그 말이 오조 홍인대사가 말한 '自心이 爲本師 "인것이다.오늘날에는 흔히 재가 불교를, 대승이라하고 출가하여 산속에 수행하는 불교를 소승이라고 하는, 학자들에 의한, 아리숭한, "불교사전"까지 나온다.●(복사)( 산스크리트어의 번역어로 '커다란 탈 것'이라는 뜻. '소승'(小乘)에 반대되는 말. 대승불교 운동은 석가의 유골을 모시는 탑(st&#363;pa)을 숭배하는 신자의 집단에서부터 일어났다고 한다. 소승의 가르침이 '법'(法) 중심인 것에 반해 대승의 가르침은 '불'(佛) 중심이고 또 ★소승이 '출가'(出家) 중심인 불교인 데 반해, 대승은 ★'재가'(在家) 신자 중심의 불교★라고도 할 수 있다. 재가의 가르침으로서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前生)의 이름인 '보살'(菩薩)과 그 이타행(利他行 : 이타적인 행동)에서 그 가르침의 기본을 발견하고, '보살'을 불(佛)에 대신하여 세상을 위해 애쓰는 이상적 인간상의 이름으로 했다.
) 남방불교 자신들이 소승이라고 말하면 큰일난다내,결코 소승이 아니라한다,중국선종이 사이비 도교의 합작품이라 하고,전통 불교가 아니라내, 티벳 달라이라마는 자신들의 종교는 "金剛乘"이라하고 중국 선종은 여래선보다 한급 더높여, "조사선"을 선양하듯이 금강승 대승선보다 더 한급을 올려 중국 선종이 "最上乘"이라하였다. 남방불교 말 되로라면 전부 가짜여! 六祖도 가짜고 선불교 모두가짜여! 도교에 보면 스승과 제자에 문답 법이 있다내, 그것이 선불교의 선문답이 사이비 도교의 것을 끌어 와서 합작 한것이 선불교라고, 남방불교인들은 평하고 있는것이다. (역시 마니 알면 다치는 것이여, 조금만알고 수행에 전념 할지어다.)
오늘날 세계종교속에 불교도 살아 남아야 하겠지만, 불교가 번영하고 드날리는것은 환영하는바이다. 그르나 대승이라고해서 원효를 자신과 같은 중생의 입장으로 봐선 좀 차이가 있는것이다. 물론 불교가 번성한 옛 시기에 깨달은 사람도 많이 나오고 하니 "불입문자 견성성불"도 말도 그때는 옳았고, 오늘날 去聖時遙하고 魔强法弱한 시기엔 깨달은 중생이 없을땐 교세 확장이라도 해야지만 불교가 살아 남는 것은 옳은 일이다.
원효 그가 지은 대승기신론을, " 광대무변한 중생을포섭하기때문에, 성문벽지불과 함께하지 않기때문에 大乘이라한다"했다. 大乘은 큰수레이니 원효는 큰수레의 구성요소가 있는데, 4섭법, 10선업,4무량,7각지,8정도,6바라밀등 37助道品으로 구성되었다는것이다. 이수레는 善知識이 수레를 모는사람이라고 하였다" 요새는 사이비 교주 유병언 같은 사람들이 많은것을 흔히 보는것이다.뭔가 공짜로 삶의 수단으로 얻어보겠다고 처처에 낚시바늘로 드리우고 있는것이다. "自心爲本師"라 내자신만 믿을 뿐이요 남은 믿지말아야 할것이다.남의 유혹에 걸리면 재산 다 바치고 후회해도 늦은것이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빠져서 죽을때 까지도 깨닫지 못하는사람도 있다. 맨날 神을 팔아 富를 축적하고, 교세만 확장하려고 유혹하는 짓들뿐이다. ★

◆각설하고
우리는 흔히 옛선사들의 깨달은 사람들은 입태와 출태에 매하지 않는다는 말이있다.
4조도신대사가 아무리 찾아봐야 법을 전수 해 줄 깨달은사람이 안 보였다. 부처님의 법맥이 끊어진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던차에 어떤 80먹은 늙은이가 찾아와서 인가해주기를청한것이다. 그가 전생의 5조홍인인것이다. "그대는 너무 늙어 법을 전수 해 줄수 없으니 몸을 바꾸어오라"는 말에 소나무 한그루를, 5조의 기념식수를 심어 놓고 오조 홍인대사는 작별을고했다. 그것은 몸을 바꾸어 와서 그대가 누군냐고 물었을때 증명하기 위해서였다.제가 바로 저기에 서있는 저 소나를 심은 사람이라"고 대답하기 위해서라고한다 .그리고 산아래로내려가 계울에서 빨래하는 처녀의 앞에서 가만히 앉아서 좌선하여, 좌탈입망하여, 처녀의 뱃속에 들어가서 처녀에 임신했다는 설이있다. 홍인대사의 어머니는, 옛날에는 결혼하지 않고 애를 배면 사형시켰다고 한다 ,즉 강물에 퐁당 할려고 했던것이다.죽어로 가는 길목에서 어떻게 돈을주고 빼내어줘서 겨우살아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유리걸식하면서 그 추운겨울에 집도 없이 꽁꽁 얼어 붙은 논두렁에서 아이를 낳았다는설이다..., 남의집 삯바느질 뭐 이런등등 일하면서 고생고생하면서 겨우 키워놓자 청천벽력같은 말을을한다. 7세가 되자, "저는 출가 하여 스님이 되겠읍니다"라고 하는 것이였다.어머님에 서로 눈물로 이별을 고하고 옛날에 4조도신스님에 몸을 바꿔오겠다고, 약속하면서 한거루 소나무를 심어놓고 간 그절로 찾아간 것이다.
어떻게 7세 소년이 자기 전생을 알고 스님이 되어 찾아 가는것을 알게 되었을까?
도신대사는 처음에 몸을바꾸어 온 7세의 홍인대사를 아마도 몰라봤던것이다. 성이 무엇인냐고 물었던것이다. 7세의 어린홍인은 佛性이라고 대답했다.도신 대사는 불성은 있지만 너는아직 어려서 모를것이다. 대답했다.그르자 7세의 홍인대사는 대답하기를 저만 모르는것이 아니라 불성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삼세제불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홍인대사는 말 하기를 "제가 저기 서있는 소나무 심어놓고 간 사람입니다. "하는 것이였다. 그는 게송을 읊어 말하기를
쓸쓸히 백발인체 청산을 내려가서,
팔십먹은 옛 얼굴을 바꾸고 돌아오니
사람은 소년이나, 소나무는 늙어있내
이로부터 세상에 다시 옴을 알았구나.
蕭蕭白髮下靑山 八十年來換舊顔
人忽少年松自老 始知從此落人間

이에 도신대사는 어린7세홍인소년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렸고, 곧 부처님의 실낫 같은 법맥이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는가? 만들어낸 이야기라내 **
그러면 서양의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설을 믿어며, 이야기 하면서,전승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우째 동양의 전해져 오는실화는 만들어낸이야기로만 간주하고 ,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경에 이른것이다.





달마는 양무제가" 내가 절을짓기를 수도 없이 짓고, 수십만의 세속인들을 출가하여 스님되게 했는데,(역사서를 보면 양무제가 출가시킨 승려가20만이라함) 그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에게 물었다 달마는 "無" 하나도 없다. 말 하자. 양무제는 그말에 달마를 의심하고,증오했던것이다,나중에 달마를 죽일려고 음식에 독약을 타서 6섯번이나 독약을 먹여도 달마는 죽지 않았던것이다. 나중에 달마는 생각하기를 내가 이미 혜가에게 법을 전수 해 주었고, 동토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거짓으로 죽은척 무덤속에 들어갔던것이다 .우리가 흔히 제사 지낼때 <영가전에>하는 염불집이 있다 "달마대사 짚신한짝 갖고 갔내" 운운하는,영가위패 앞에 염불하는 대목이 나오는것이다.달마가 무덤속에 짚신한짝 남겨놓고 짚신한짝은 주장자에 걸고 히말라야산을 넘어가려고 할때 중국 사신을만나서 알게 되고 달마가 짚신한짝을 주장자에 걸고 가더라는이야기를 돌아와서 왕에게 이야기해서 실제 무덤을 파보니 달마는 없고 짚신 한짝만 남겨져 있더라는것이다.

달마가 처음 중국으로 건너올때 강변에(바다인지?) 죽은 구렁이가 오래되어 냄새도 나고 해서,달마는 자신의 몸을 벗어버리고 영혼이되어 구렁이 몸속에 들어가 서 구렁이를 이끌고 바다에 버리고 나오니 자기 몸이 없어져 버려서,사방을 찾아보니 한곳에 험상궂은 몸이 하나 있어서 들어가서 몸을 찾이 했다는 이야기가있는것이다. 원래 달마대사는 왕족출신이어서 굉장한 미남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몸을 바꾸고 난뒤에 우리가 흔히 그리는 험상궂은 달마도 처럼 험상궂은 인상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서를 보면 달마는 중국북쪽의길로 중국에 들어 왔다는설과, 남쪽으로 들어 왔다는 설이 있다.
신화적인 이야기로는 달마가 갈대잎을 타고 바다로건너왔다는 설이 있다. 오래된 갈대탄 달마도는 지금 몇백만원짜리 그림도 있다.

우리는 인간적인 사실로 볼때 물론 사람들이 신화라고 하겠지만, 서양에도 <십계>에 모세는 노예출신이였는데 살인을하여 사형될건대 왕이죽이기는싫었는지 저멀리 사막에 쫓아버렷다.축출 되어 어느산에서 빛의체험후 신통을얻어 고통받고 있는 노예상태의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노예상태를 면하게하고 그 노예백성들을 이끌고 지팡이로 바다를 갈라서 길을만들어 가나안땅으로 건너는 일이 있다. 그들은 믿음의성전으로 철저한 하나님이 실현한 사실로 믿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서양신화만이야기하고, 이런 달마의 이야기같은건 몇몇 불교인들만 간혹 알뿐이다 심지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교과서적인것만 말할뿐이다.
부처님도 어머님 뱃속에서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아직 탯덩어리인 아기가 한쪽손은 하늘을 가르키고 한쪽 손은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하셨다 이것이 인간에 있을수 없는 일이라하여 신화로만 남길 것이가? 그리고 난뒤 싯달타 태자 짐짓 어리석은체 동서 남북을 유람하면서 생로병사를 본것이다.짐짓 생로병사를 보시면서 저것은 무엇인고? 인간은 다 저런것이 있는가 옆에 사람들에게 물은 것이다. 나는 왜 부처는 세상에 나오자 마자 제일 먼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하는 가장위대한 세상에서 가장 지혜있는, 현명한사람처럼 말 해놓고 그 뒤 가장 어리석은사람처럼 四門遊觀相하며, 옆에 수행하는 사람한테 생로병사를 물은것이다. 인간에게는 왜 이런것이 있는가 짐짓 모른체하고 어리석은체 하고 인간들에게 물어본것이다
불법은 방편이다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깨닫기전에는 계를 직히고 불법을 수행해야한다. 깨달은 후에는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해야 하는것이다. 불교의 수행덕목이 육바라밀이다 깨달은 보살은 육바라밀에서부터 덧붙여서 십바라밀이 있어야한다.한없는 방편이 있어야하고, 보살 만행이 있어야한다 이것이 보살의원력인것이다.방편과 원력의 수행이 덧 붙여 져야한다.

★★아래 _소리비님이 나에게 묻는다

" 그렇다면,
깨달았다는 것을 빌미로 온갖 만행을 행해도
그 것이 큰 흉허물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리고, 깨달았는지 아닌지는 과연 누가 판단을 할 수 있는지...
거기까지도 말씀을 해주셔야지요! ^^*

방편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흉이될만한 언행에 대한
적절한 핑계가 아닐런지 궁금합니다. "

답:



★(첨가)★★나도 없는데 탐욕은 누가 느끼는가? 탐욕을느낀다는것은 아직 나라는相에 집착해 있다는뜻이다. 상에 집착해 있다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뜻이다. 술 먹었다고 했어 자성이 혼미해져서 잠시 나라는 상에 집착 되어졌다는뜻인가?&#65279;

대장경에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이 없는곳에는 보살이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나무나 원숭이나 여러형태로나투어서 간접적으로 그사람을 깨우치게 하는 방법 이것을 방편이라 합니다 석가모니가 도솔천 호명보살인데 그런 호명보살로 직접 인간세상에 나고죽지않는 하늘나라의 수명과신통력으로 인간세상에나와서 중생을 구제하셨다면 이것은 "방편이 없다"하는 것입니다.보살은 중생을제도하기 위해서 쌀이없는 곳에는 쌀이되어 배고픈 중생을구제하고 요새처럼 성추행 인신매매 많은 곳에는 보살은 그사람들을제도하기 위해서 몸소 창녀가 되고(화엄경에 53선지식 가운데 창녀도 있다) 배고픈 호랑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찢어서 고기가 되어주고 등등 ,

불교방송에도 종종거사님들의 설법에 방편을 남용한다는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 무슨 중생이 막행막식하면서 핑계로 방편이란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방편을보이지만 중생이 무슨막행막식하는것이 자기행위에 지나지않은, 남을 위한 어떤뜻이 없습니다. 자기 행위가 아닌 남을 위하여 구제해 줄수있는언떤 편리를 위한 방법을 난 방편이라 봅니다.

용수보살도 말하기를 하늘나라의 몸으로 직접적으로 인간세상에 나오셨다면 중생들은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았을것이라고 합니다.왜냐하면 하열한 중생들은 저것은 인간이 아닌,신들이 하는 짓이요 인간이 감히 따라 갈수 없는, 중생들이 차이를 느끼게해서 수행을 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원래 보살은 신통자재한 보살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보살이 인간의 몸을나타내어 나처럼 인간은누구나 이렇게 수행하면 결국 부처가된다는 것을 연속극 드라마를 꾸민것을 이런것을 방편이라합니다.
중생들은 남을 구제할 능력이 없는데 막행막식을 방편이라하면 전도된 말 입니다. 그것은역시 핑계일뿐 보살의 방편과 천지차이지요
중생은 남 구제할 능력이 되지 못하니 방편이라는 말은 보살에게만 사용 할 수있는 말 일것입니다.

요새 음식에 믿을 만한 음식이 없음을 알았다. 마트에 사먹는간장이나된장은 다 염산이 들어간다내 염산이 들어가야 진짜 된장처럼 까맣게단시간안에 된장이 된다내,원래 된장 숙성할려면 1년이 걸리지만 염산으로 된장 만들려면 단 몇시간 안에 새까맣게 되어서 된장이 만들수 있다내,김에도 염산을 뿌리지 않은면 벌레가 끼어서 생산을 할수가 없다내, 콩나물에도 성장 촉진제를 물에타서 키우지 않으면 콩나물 키우기가 어렵다내 성장 촉진제를 넣어야 콩나물에 잔발이 생기지 않고 단시간에 큰다나, 이것을 보면 세상에는 믿을놈 한놈도 없는것이다 자기 편리를위하여 남의 건강을 전혀 생각지않는, 혹시 이것을 편리한 방법이라하고 한문으로(方便)으로 잘못 해석하는것은아닌지 의문스럽다 .막행막식이란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자기탐욕을위해 남을 의식하지않는 방법은 같은류에 속할것이다

세상의 모든형상은 토끼의 뿔과 같은것입니다. 迷한사람이 술도 먹고, 살생도하면 因果에 걸려 윤회하지만 깨달은 사람이 윤회因果을 걸린다해도, 실제적인 인과 법으로 원수를 만난다해도, 꿈속과같은幻으로 보며, 꿈의환상과 같이,자신도 텅 비어있고 이우주도 텅 비어있는,한물건도얻을수없는텅빈세계를 체달하여 설사 지옥이 그를 덮친다해도 환술같은것을아니까요.영가선사 왈"몽리에 유육취러니 각후에 공공 무 대천이로다"한 말과 같습니다

★(첨가)★★나도 없는데 탐욕은 누가 느끼는가? 탐욕을느낀다는것은 아직 나라는相에 집착해 있다는뜻이다. 상에 집착해 있다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뜻이다. 술 먹었다고 했어 자성이 혼미해져서 잠시 나라는 상에 집착 되어졌다는뜻인가? 달마는 독약을 6섯번이나 먹어도 자성이 혼미 하지않고 더욱 더 또렷 해&#51275;다는데...,?

여기 방거사 게송을 하나 소개 하겠습니다
但自無心於萬物 何妨萬物常圍繞 鐵牛不파(두려워할파)獅子吼 恰似木人見花鳥
木人本體自無情 花鳥逢人亦不驚 心境如如只遮是 何려(걱정할려)보리도不成
● 방거사 게송= 만물이 나를 둘러싼다해도 방해 될일이 없다내 흡사 철로 만들어진 소는 사자의 외침을 두려워 하지않는것 같이,,,,,.●

★★원효스님을 파계승이라하고, 한 인간으로 과소 평가 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은데, 언젠가 동국대 교수 이종익박사도 의상스님은 3지보살이고,원효스님을 "8지보살이다"라고 어떤책자인가 본거 같은 아리송 한기억이 있다. ★이광수 소설 끝부분에 나오는 원효대사가 산적들을 만나서 원효를 끓는 기름가마에 넣어려고 하는것만 나오지 실제 기름가마에 들어가는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이광수는 좀더 리얼한 인간적인 소설을 쓰려고 신화적인 면을 빼 버린것 같다. 이광수 이전에 소설은 실제 원효를 꽁꽁 묶어서 그것도 일부려 원효는 못 이기는척,묶여서 자신이 직접 걸어서 끓는 기름가마속에 들어가서 "아이고 춥어라! 불을 더 때어라" 하는묘사가 나온다 세상에 펄펄 기름가마속에 들어가서 춥다고 외친 우습운 이야기 나오는데 이광수는 이것을 삭제한것 같다. 요새 사람들은 신화적인소설은 잘 안쓰고,잘 안 믿는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옛날에 들은 말로는 의상 스님은 계행이 청정하여 天供을 받아 드신다는 이야길 들었다.하늘에서 내려오는 공양을 받아 드신다고 했다 하루는 의상이 원효스님을 공양 대접할려고 초청한것 같다 원효는 의상스님 곁에와서 점심때가 넘어서도 공양을 주지 않자 원효는 돌아 갔다는 이야기다. 의상이 천신들에 물었다. 왜 공양을 가지고 오지 않았냐고 천신들은 이야기 하기를 하늘까지 엄청난 왕벌때들이 왱왱거려서 내려갈수가 없었서 숨어 있다가 내려왔다는 이야기였다.이와 같이 원효의 신통력이 굉장한것으로 옛날 들은이야기로 다 잊어버리고 내대로 해석하여 이야기 해본것이다. 원효가 무덤속에 해골물 마시고, 깨닫기전에 영축산 반도굴에 혹독한 추위속에 기도에 의해 낭지스님을 친견하여 대승경전을 배우게된다. 낭지스님이 원효의 지극한 기도에의해서 아무도 없는 빈굴속에서 홀연히 나타났다는것이다.원효는 그기서 대승경전을 배우는것이 나온다. 원효가 훗날 초발심자격문에 발심수행장이 그기에 혹독한 추위에 의한 기도의 결과 자신의 수행한 경험들이 었다는것이다 ★예)★(절하는 무릅이 얼음 같을지라도 불을 생각하는 맘이 없으며, 높은산 험한바위는 지혜있는사람들이 거처 할 곳이요 푸른소나무와 깊은골짜기는 수행자가 살아 갈 곳이니라 주리면 나무열매를 찬하여 주린 창장자를 달래고(★ 원효는 도토리 주어다가 삶아먹고 살았다함) 목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갈증을 쉴지니라.맛있는 음식을 먹어 사랑해 길러도 이몸은 정히 무너질것이요 부드러운옷을 입어 수호할지라도 목숨은 반드시 마침이 있나니 메아리 울리는 바위굴로 염불당을 삼고 슬피우는 오리 새로 환심의 벗을 삼을지니 절하는 무릎이 얼음같을지라도 불을 생각하는 맘이 없으며 주린 창자가 끊어지는것 같을 지라도 밥을 구하는 맘이 없으며 백년의 수명은 잠깐사이라 어찌 배우지 않을 것인가? 일생이 얼마나되간데 닦지않고 지날 것인가? 하는 등등) 정말로 절절한 도심이 울어나는 글이다. 지극하고 간절한도심이다 이런도심이 있는데 누가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요새는 이런 도심이 없어서 깨달은 선지자는 아애 없다고 봐야지요. 낭지스님은 십지 보살이라고 하는데, 내가 옛날 언뜻 본기억이있어서 대충 이야기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에 낭지스님을 찾아보고 여기 복사해서 옮긴다

◆◆ 원효(元曉)가 반고사(磻高寺, 경남 울주군 영취산 서북쪽에 있던 사찰)에 있을 때 항상 낭지 스님을 찾아가 뵈었다. 스님은 원효에게 <초장관문(初章觀文, <초장관심론(初章觀心論)>. 원효가 지은 책 이름)>과 <안신사심론(安身事心論, 역시 원효가 지은 책 이름)>을 저술하도록 하였다. 원효가 저술을 마친 뒤 은사(隱士) 문선(文善)을 시켜 책을 받들어 보내면서 책 끝자락[篇尾]에 게송 구절을 적었는데, 다음과 같다.


서쪽 골짜기에 사는 중이 머리를 조아리니

동쪽 봉우리의 상덕(上德) 고암(高巖) 앞이로다.(반고사는 영취산 서북쪽에 있으니, 서쪽 골짜기의 중이란 자신을 일컫는 것이다)

가는 티끌[細塵]을 불어 보내 영취산(靈鷲山)에 보태고

가는 물방울을 날려 용연(龍淵)에 던집니다.


영취산 동쪽에 대화강(大和江)이 흐르는데, 중국 대화지(大和池)에 살던 용의 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용연(龍淵)이라 부른다. 지통과 원효는 모두 큰 성인(聖人)이었다. 두 성인이 모두 스승으로 섬겼으니[&#25715;衣] 낭지 스님의 법력이 얼마나 고매했는지 알 수 있다.

스님은 일찍이 구름을 타고 중국 청량산(淸凉山)으로 가서 신도들과 함께 강의를 듣다가 잠시 후 돌아오곤 하였다. 그곳 승려들은 스님을 이웃에 사는 사람으로 여겼지만, 어디 사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어느 날 절에서 승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늘 이곳에 머물러 사는 자는 제외하고 다른 사찰에서 온 승려들은 각각 제가 사는 곳에서 자라는 이름난 꽃과 기이한 식물을 가져다 도량에 바쳐라.”

낭지는 다음날 산중에 자란 기이한 나무의 가지 하나를 꺾어 가져다 바쳤다. 그 곳 승려들이 그것을 보더니 물었다.

“이 나무는 범명(梵名)으로 달제가(&#24603;提伽)라 하고, 이곳에서는 혁(赫)이라 부른다. 오직 서천축(西天竺)과 해동(海東)의 두 영취산에서만 자라는데, 이 두 산은 모두 제 10 법운지(法雲地, 보살 십지(十地)의 제10. 대법(大法)의 지운(智雲)이 두루 퍼져 단 이슬비를 내리게 하는 지위를 말한다)로 보살께서 사는 곳이지. 이 사람은 분명 성자(聖者)일 것이다.”

마침내 행색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제야 해동 영취산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스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이름도 중외(中外)에 널리 알려졌다. 나라 사람들이 그 암자를 혁목암(赫木庵)이라 불렀는데, 지금 혁목사(赫木寺, 경남 양산시 영취산에 있던 사찰)의 북쪽 산등성이에 오래된 절터가 있으니, 혁목사가 있던 자리다.

<영취사기(靈鷲寺記)>에서 말하였다.

“낭지 스님이 일찍이 ‘이 암자가 있는 곳은 가섭불(迦葉佛) 때의 절터인데, 땅을 파 등항(燈缸) 두 개를 얻었다.’고 말하였다. 원성왕(元聖王) 때에는 고승 연회(緣會)가 이 산속에 와 살면서 낭지 스님의 전기(傳記)를 지었다. 이것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화엄경>을 살펴보니 제10은 법운지라 하였다. 지금 스님이 구름을 탄 것은 대개 부처가 삼지(三指, 알 수 없다)로 꼽고, 원효가 1백 개의 몸으로 나눴던 일[원효불기(元曉不羈)조 참조]과 같은 것이다.

찬(讚)한다.


산속에서 도를 닦은 지 1백 년 동안에

고매한 이름이 일찍이 세상에 드러난 적 없었지.

산새가 한가롭게 우짖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구름 타고 오가는 일도 별 수 없이 드러났구나.

■★◆ 아래는 원효스님 이 신통력으로 중국땅스님들 천명을 구했다는 척판암 유래입니다 ★
척판암(擲板庵)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1번지(051-337-3547)

척판암(擲板庵)에서 원효대사님이 선정 중에 혜안으로 살펴보니 당나라 종남산 태화사의 천명 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海東元曉擲板救衆이라고 쓴 큰 현판을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태화사에 날려 보냈다. 그곳 대중들이 공중에 떠 있는 현판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법당에서 뛰쳐나와 보는 순간 절 뒷산이 무너져 큰 절이 매몰되었다. 이 인연으로 목숨을 구한 천명의 중국 스님들이 척판암으로 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스님은 그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 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척판암 유래 안내문에서)

※ 양산 천성산(922m, 원효산)내원사의 유래에 척판암(擲板庵)에 주석하던 원효가 당 태화사(唐 太和寺)에 수도하던 천명(千名)의 스님이 장마로 뒷산이 사태(沙汰)가 나서 몰사할 위기일발에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盤救大衆)이라는 글 쓴 큰 판자를 던져 구출했다.

그 후 천인(千人)은 신라(新羅)에 건너와서 원효(元曉)의 문하(門下)에 오니 원효는 이들을 거느리고 수도처를 찾아 이 산에 가서 내원사를 창건하고 이들을 이곳에서 수도케 하였다. 그리고 산사의 화엄(華嚴)벌에서 강연(講演)하였다 한다. 이 산에서 일천의 비구가 모두 득도했다 하여 천성산이라 했다고 하는 설화가 전한다. 천성산과 원효산은 봉우리가 같이 붙은 산으로 원효산엔 원효암이 있다.

◈ 천성산(千聖山, 922m)

원적산이라고도 한다. 태백산계에 속하며, 남서쪽에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있는 산을 원효산(元曉山)이라 하였는데, 양산시에서 이전의 원효산을 천성산 주봉(主峰)으로 하고, 이전의 천성산(812m)을 천성산 제2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나무 이정표에는 예전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1,000명의 승려를 화엄경(華嚴經)으로 교화하여 모두 성인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천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많은 계곡과 폭포 및 뛰어난 경치로 인해 예로부터 소금강산(小金剛山)이라 불렀다. 양산시 중앙부를 남북으로 뻗은 정족산(鼎足山) 줄기의 지맥에 해당하는데, 이 산줄기에 따라 양산시가 동·서로 갈리며, 회야강(回夜江)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영축산과 함께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한다.

원효암을 비롯하여 홍룡사(虹龍寺)·성불사(成佛寺)·혈수폭포(血水瀑布) 등의 명승지가 산재한다. 제2봉의 북서쪽 사면(하북면 용연리)에는 통도사(通度寺)의 말사(末寺)인 내원사(內院寺)가 있다. 희귀한 꽃과 식물·곤충들의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화엄 늪과 밀밭 늪은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가을에는 울창한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원효와 거지의대장 뱀복이 이야기 (복사)

서라벌(慶州) 만선북리萬善北里에 사는 홀어미가 남편도 없이 아이를 낳았는데 나이가 열두 살이 되어도 말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 채 기어만 다니기에 그 아이를 ‘뱀아이蛇童’라 불렀다. 그 뱀복이 자라 과부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느 날 뱀복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는 고선사高仙寺에 주석하고 있던 원효스님을 찾아가자 원효스님은 예로써 맞이했고 그는 답례도 하지 않고 말했다.
“스님, 우리가 전생에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지냄이 어떻소?”
원효스님이 좋다고 했다. 원효는 뱀복과 함께 그의 움막으로 갔다. 원효는 뱀복이 원하는 대로 선善을 기르고 악惡을 없애 주는 의식을 치르며 그 주검 앞에서 빌었다.
“세상에 태어나지 마라, 죽는 일이 괴롭구나.
죽지를 마라, 세상에 나는 일이 괴롭도다.
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그 간단하고 훌륭한 염불을 뱀복이 듣고 너무 번거롭다 하니 원효스님은 다시 고쳐 짧게 말했다.
“죽고 사는 게 모두 괴로움이로구나.死生苦兮”
그제야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스님은 요령을 흔들며 염불을 했다.
“산하대지 삼라만상이 내 마음의 장난이로구나. 콩 심어 콩 나고 팥 뿌려 팥 거두니 인과응보는 분명하구나.”
뱀복을 따르는 천민의 무리가 행렬을 이루며 뒤를 따랐다.
어느 벌판에 이르자 뱀복은 여기서 쉬어 가자며 주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게송을 지어 읊었다.
“그 옛날 석가모니부처께서는 사라수娑羅樹에서 열반에 드셨네.
지금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려하네.”
이 게송을 남긴 후 뱀복은 홀연히 풀 한포기를 뽑으니 또 다른 장엄한 세계인 청허淸虛한 세상이 펼쳐졌다. 그 연화장 세상으로 죽은 어미와 함께 들어가니 그 땅이 합쳐졌다. 이것을 보고 원효스님은 돌아왔다.




일연(一然1206~1289)스님은 그 대목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금강산(慶州)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도량사道場寺’라 했는데 해마다 3월14일이면 점찰회占察會를 열었다 한다. 뱀복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이 일 뿐인데 민간에선 황당한 얘기를 덧붙였으니 우스운 일이다.




‘연화장蓮花藏세계’란 이상적인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인과 범부가 누구인가. 부처 아닌 이 어디 있을까. 미혹할 때 범부요 깨달으니 부처의 자리다.

지옥 천당이 어디인가. 내 마음의 장난일 뿐. 집착을 놓아버리고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본래 자리로 돌아갈 때가 진정 자유인이다.
원효와 뱀복은 한바탕 무애춤無碍舞을 추었을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무애가無碍歌를 불렀을 것이다.
고려 때 일연스님은 그의 『삼국유사』에서 뱀복(蛇福, 蛇包)을 이야기 하며「사복불언蛇福不言」이라 했다.『노자老子』제56장第 五六章의 ‘지자불언知者不言 언자불지言者不知’ 곧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도를 아는 자는 말을 아끼는 법. 천하의 원효스님 법문法問을 번거롭다며 일침을 가하던 뱀복이 아니던가.
원효스님과 뱀복은 전생의 도반이었고, 두 사람이 경전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사람으로 태어나자 뱀복은 그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업보든 보답이든 그의 어머니를 원효스님과 함께 연화장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일연스님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땅속 연화장세계로 사라져버렸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을까.
‘원효방 이야기’를 생각하면 뱀복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고 죽는 일도 자유 자재하던 도력의 소유자인 뱀복은 할 일을 마치고 전생의 도반인 원효스님 곁에서 그림자처럼 시자侍者로 살았으리라. 주연 옆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인 탁월한 조연처럼.
서라벌이라는 사바세계를 무대로 원효와 뱀복은 주연과 조연이었다. 우리는 안다. 조연의 내공이 탄탄해야만 주인공이 단연 돋보인다는 것을.
뱀복은 경주 흥륜사興輪寺 금당십성金堂十聖 중 한사람으로 원효와 함께 추앙받던 성인이었다. 동경흥륜사東京興輪寺 금당십성金堂十聖을 소개하면, 동쪽 벽에 앉아서 서쪽으로 향한 이상(泥像: 진흙으로 만든 형상)은 아도我道 · 염촉厭&#39633; · 혜숙惠宿 · 안함安含 · 의상義湘이다. 서쪽 벽에 앉아서 동쪽을 향한 이상泥像은 표훈表訓 · 사파蛇巴 · 원효元曉 · 혜공惠空 · 자장慈藏이다. 흥륜사는 신라 최초의 절집이다.
뱀복은 힘없는 백성들과 함께 살았던 민중불교 운동가였다.
『삼국유사』에서 사라져버린 그 뱀복이 백제 땅에 나타나 원효방에서 원효스님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옛사람의 흔적이다. 이르는 곳마다 도인은 숨어있다고 했는데 우리 시대에 이런 뱀복 같은 도인을 어디서 만날까.

▲▲ 원효가 분황사 공양주, 부목할때 자신이 지은 기신론을 서로이야기하고 싸우는 강원 학인들을 옆에서 가만히 원효는 듣고 있었다는이야기, 그리고 원효는 자신이 손수 공양주해서 밥을지어 그 학인들을 공양했던 것이다 그리고 손수 누룬지를 끌거서 방울 노스님에게 갔다준이야기 등▲(아래는 그걸복사함)


<생략>
대안이라고 불리는 스님은 경주 남산 골짜기에서 풀로 엮은 움막집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나 늙고 병든 산짐승들을 보살펴 주며 거지같은 행색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면 < 편안하시게!!, 대안(大安)하시게!! >이렇게 외치고 다녔으므로
대안스님이라고 불렀을 뿐,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지요.

어느 날 원효는 걸승인 대안(大安)스님을 길거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 이보시게 원효!! 나와 함께 가볼 곳이 있는데? > 하고는 성큼성큼 앞장 서며 원효를 재촉합니다.
무엇에 이끌리 듯 대안을 따라 서라벌 북쪽으로 흐르는 북천내를 건너서 도착한 곳은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창녀들이 모여사는 빈민촌인 동촌 마을이었습니다.
대안은 평소 잘 아는 듯한 술집으로 들어가면서
<주모~~여기 귀한 손님 모시고 왔으니 술 한상 잘 봐오시게.> 이렇게 외칩니다.

계율을 청정히 지키며 성(城) 안에서 왕과 왕족, 귀족과 지식인 등 상류층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항상 상객으로만 대접받던 원효로서는 내심 불편하고 화가나서
< 이런 깨끗하지 못한 곳으로 나를 데려오다니??> 불끈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돌아가는 등 뒤에서 대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원효!! 마땅히 구제 받아야 할 중생을 여기다 두고, 어디 가시려는가?>


대안이 던진 이 말은 불쌍하고 빈천한 동촌 사람들을 보살피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그것을 벗어 던지기 위해서 가장 비천한 일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변장을 하고 큰 절을 찾아가서 부목을 하게 되는데


부목은 절간의 머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수 백명이 넘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큰 절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힘든 농사도 짓고, 땔감 나무도 하고, 허드렛 일도 하며 지내는데
부목들을 대하는 스님들은 대개 하인을 부리듯 하대를 하며 무시를 하였습니다.


원효는 스님들이 괄시를 하든말든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다른 부목들과는 달리 시키는 일을 정성껏 할 뿐만 아니라,
일이 없는 날에도 스스로 일감을 찾아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됩니다.



그 절에는 키도 작고 볼품 없고 모습조차 괴이하게 생겼으며
행동조차도 어린아이와 같아서 스님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한마디로 왕따인 방울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원효는 그를 불쌍하게 여겨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밥을 차려 주기도하고
아플 때면 보살펴 주기도 하면서 특별히 챙겨주고 보살펴 주게 됩니다.



어느 날 원효는 스님들이 모여 있는 법당을 청소를 하게 되는데,
걸레로 바닥을 닦으면서 가만히 들어 보니
경전 해석을 두고 양편으로 나누어져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논쟁을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석해야 맞지 않을까요?>하고 한쪽 편을 들게 되는데
그러자 양편으로 갈라져서 논쟁하던 스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니가 뭘 안다꼬?> 하면서 합세를 하여 원효를 야단을 칩니다.



무지랭이 부목 따위가 자신들의 논쟁에 끼어든 것 자체로 상당히 기분이 상한 스님들은
부목의 말이 맞는 것도 같지만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조실스님께 물어 보기로 합의하고 큰스님이 있는 방으로 달려가서
그간의 쟁점을 말하며 판결을 부탁하는데


< 그것은 이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는 말과 함께
원효가 분황사에서 저술했던 대승신기론소를 건네 줍니다.
법당에 다시 돌아 온 스님들이 그 책을 펴놓고 읽어보니
논쟁하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을 확연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한 편 그들 중에는 < 이렇게 훌륭한 원효스님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고 탄식하면서
<안거가 끝나는대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친견해야겠다. > 고 결심하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언쟁이 끝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책 속에 있는 내용과
조금 전에 법당 청소를 하던 부목이 던진 말과 똑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스님들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그의 행동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른 부목들과 달리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그를 불러 오라고 하게 됩니다.


한편 원효라는 때를 벗기위해 부목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목으로서 부목답지를 못하고 스님같은 언행으로 신분이 탄로났슴을 깨닫고,
서둘러 봇짐을 챙겨서 들키지 않게 조용히 대문을 열고 달아나려고 합니다.



대문을 밀고 막 나갈려고 하는데
문간방 문이 열리면서 방울스님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는
< 원효!! 잘 가게!!> 벼락같이 소리치고 방문을 탁 닫아 버립니다.



그 순간 원효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고, 크게 깨닫게 됩니다.

방울스님은 이미 깨달아 밝게 보는 자였는데도 불구하고
행색이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는 상(相)에 집착하여
구제해 주어야 할 불쌍한 중생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무명(無明)이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 마땅히 구제 받아야 할 중생을 여기다 두고, 원효! 어디 가시려는가? > 라고
대안스님이 던져 준 화두에서 마땅히 구제 받아야 할 중생이
동촌에 살고 있는 가난하고 비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명성과 권위이라는 헛된 것에 사로잡혀 있던
원효, 불쌍한 그 자신임을 확연히 깨치게 됩니다.



마땅히 구제 받아야 할 원효에게 완전히 떨쳐 버려야 할 것은
사람들에게서 받는 칭송과 명성과 권위라는 헛 된 상(相) 이었습니다.


그것을 벗어 던지기 위해 승려에게 있어서 목숨과도 같은 계율을 파하게 됩니다.
요석공주와 스캔들을 일으키고, 우스꽝스러운 광대복장을 하고 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면서 계율을 파하는 원효에게
과거에 보냈던 찬사와 존경 대신에 손가락질과 비난을 퍼붓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동촌마을을 다시 찾아 갔을 때,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를
높고 귀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
오히려 자신들이 보살펴 주어야 할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받아 들이게 됩니다.



이후 원효는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며
농사를 지으면 농사꾼이 되고, 고기를 잡으면 어부가 되고,
술을 마시면 술꾼이 되고, 뱀을 잡으면 땅꾼이 되고, 소를 잡으면 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농사꾼, 어부, 술꾼, 땅꾼, 백정 등이 되어 지나는 곳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던 주정뱅이는 어느새 술을 끊게 되고,
도둑은 도둑질을 그만두고 이웃을 도와주게 되고,
싸움질만 일삼던 사람은 온순하고 착실하게 되고,
살생을 좋아하던 사람은 생명을 소중하게 보살피게 되고,
미움과 증오에 찬 사람은 어느새 사랑과 자비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진흙탕에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연꽃이 핍니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중생들은 자신의 연꽃을 피우게 되었고, 또한 더러운 흙탕물조차 깨끗하게 정화되었습니다.


이런 원효의 경지를 화엄에서는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를 넘어선
화작(化作)이라고 하지요.

분황사에 기거하던 한 때의 원효처럼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현인을 사람들이 금방 알아 볼 뿐 아니라,
존경하기에 그 길을 가는 것은 쉽습니다.

부목생활을 하던 한 때의 원효처럼
살아있는 것들과 살아 있지 않는 것, 일체 모든 것을 사랑하고 불쌍하게 여기며
전체와 분리된 자아가 아닌, 전체와 함께 되어 살아가는 성자의 길은 어렵습니다.



원효가 아니기에 수 천의 원효가 될 수 있는 무애행(無碍行)의 원효처럼
일 천장의 연꽃이 피어나는 경지인 화작(化作)은
수 천년 인류사에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희귀한 사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화작의 보살이 된 원효를 알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후의 행적을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수 많은 원효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방방곡곡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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